한국은행에 따르면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 8월에도 72억7000억달러에 달해 30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로써 올 1~8월 누적 흑자가 464억달러로, 연간 흑자규모는 한은의 예상대로 84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2012년 508억달러, 지난해 799억달러에 이어 3년째 흑자가 급증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비율도 적정선(4%)을 훌쩍 넘긴 6%에 달해,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을 빼면 독일 다음으로 높다고 한다.

나라곳간이 바닥 나 외환위기까지 겪은 나라에서 경상흑자를 반겨야 정상인데 현실은 정반대다. 흑자의 질이 나쁘고 규모도 주체 못할 수준인 데다 원화절상 압력만 커지고 있어서다. 올 1~8월 중 수출은 2.6% 늘어난 반면 수입은 되레 4.7% 감소했다. 내수투자 부진으로 수입이 줄면서 경상흑자가 커지는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다. 한동안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선을 위협하더니, 요즘은 달러 강세 속에 엔화 약세가 걱정이다. 100엔당 950원대로 내려간 원·엔 환율은 내년에 800원대를 점칠 정도다. 경제 실력과 무관하게 원화가치만 과대평가된다는 것이 정상적일 수는 없다.

문제는 환율이 내려가도 경상흑자가 줄지 않고, 경기만 나빠지는 ‘원고(高) 불황’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대기업들조차 수익성이 악화일로인데 원화만 강세이니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의 악몽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3년째 경상흑자가 과도하게 쌓이는데도 대책다운 대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오히려 올 세제개편안에서 기업의 해외투자를 투자로 인정하지 않는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하고, 해외에서의 세금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 만큼 달러가 국내에 쌓일 일은 더 늘게 생겼다.

환율은 정부에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껏해야 한은의 금리인하를 종용할 뿐,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궁극적인 해법은 기업의 대규모 자본재 투자를 이끌어낼 과감한 규제개혁 등 정공법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과도한 경상흑자를 방치하고선 경제살리기도 변죽만 울리게 된다. 언제까지 한은 핑계만 댈 수는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