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진 교수의 경제학 톡] (94) 국가경쟁력 평가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에서 ‘국가경쟁력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144개국 중 한국의 전체 순위는 26위인데, 정부정책 수립 투명성 133위 등 114개 평가항목 중 100위 안에 들지 못한 항목 수가 16개나 된다.

국가 간 비교지표를 개발, 발표하는 기관은 많지만 국가경쟁력 평가 보고서는 기업경영자들로부터 수집한 설문조사 결과를 비중 있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따라서 평가항목에 따라 다른 나라보다 객관적 여건이 낫더라도 설문에 참가한 우리나라 기업가들이 평균적으로 불만스럽게 느낀다면 낮은 등수를 받을 수 있다. 114개 평가항목은 12개의 지표로 묶이는데, 평균적으로 가장 낮은 등수 분포를 보이는 지표는 가장 많은 평가항목을 보유한 ‘제도(institutions)’다. 제도에 관한 평가항목 21개 중 가장 높은 등수가 45등일 정도로 제도적 환경에 대한 한국 기업가들의 평가는 매우 좋지 않다.

제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제학 내에서도 많은 관심이 있어왔다. 이른바 ‘주류 경제학’이라 불리는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정치적 안정이나 재산권 보호 같은 시장경제 발달에 필수적이고 공통적인 제도적 요인들을 중시한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에서는 시기나 국가에 따라 특수성이나 예외성을 갖는 구체적인 제도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데 반해 ‘제도학파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경제 행위에 바탕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제도의 역할과 그 진화를 주목한다. 예컨대 주류 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선호를 이미 정해진 것으로 보지만, 제도학파 경제학에서는 취향이나 선호가 제도적 환경에 의해 형성되고 한계가 정해진다는 관점을 갖는다. 그러나 어떤 입장이건 제도와 경제가 매우 중요한 관계에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사회의 안정과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고 봤을 때, ‘국가경쟁력 평가 보고서’에서 드러난 한국 제도에 대한 기업가들의 평가는 간과할 수 없다. 7점을 이상적인 수준으로 봤을 때 ‘정치인들의 윤리적 수준’ 2.4점, ‘사적 기업이 사법체계를 통해 정부 조치나 규제에 도전할 수 있는 정도’ 2.8점, ‘정책이나 정부계약에 관료들이 인맥 있는 회사나 개인에 특혜를 주는 정도’ 2.9점 등과 같은 결과는 놀랍지 않지만 새삼 우리의 문제를 잘 요약했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설문해 내년에 발표될 결과는 올해보다 낫지 않으리라. 점수나 등수가 중요해서라기보다 그것이 반영하는 우리의 좌절과 불신 때문에 매년 반복되는 발표라도 가볍게 볼 수가 없다.

민세진 < 동국대 경제학 교수 sejinmin@dongguk.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