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불꽃놀이
조선 건국 후 한동안 화약 쓸 일이 없었다. 고려 말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제조법은 날로 개선됐지만 사용할 데가 없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불꽃놀이였다. 군사용 화약을 유희용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북방 야인들과 일본 왜구에게 조선의 힘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정종 1년(1399년) 일본 사신들이 왔을 때 군기감에서 불꽃놀이를 보여 줬더니 입이 딱 벌어지더라는 기록이 있다. 북방 유목민들도 조선의 불꽃 앞에서 쪼그라들었다.

세종 때는 화약 발명국인 중국을 능가해 기술 유출을 걱정할 정도가 됐다. 예조판서 허조는 “불 쏘는 것의 맹렬함이 중국보다 나으니 사신들이 청하더라도 절대로 보여주지 말라”며 중국을 경계했다. 군사 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으려는 금비책의 일환이었다. 조선 임금 중 불꽃놀이를 가장 좋아한 이는 성종이었다. 연말과 연초마다 불꽃에 탐닉해 신하들의 원성을 들을 정도였다.

불꽃놀이의 시초는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약이 나오기 전에도 원시적인 연화(煙火)는 있었다고 한다. 13세기 화약 발명 후 기술이 발달해 유럽으로 퍼졌다. 19세기에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이 등장한 뒤 더욱 화려해졌다.

세계적인 이벤트로는 매년 마지막날 자정에 열리는 호주 시드니의 새해맞이 불꽃축제, 매년 8월 넷째 토요일 열리는 일본의 오마가리 불꽃대회, 6월 중순~7월 말 개최되는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연화대회 등이 유명하다. 스페인 발렌시아의 3월 봄맞이 축제는 목수들이 겨우내 묵은 옷가지를 태워 없애던 풍습을 현대화해 관광객을 끌고 있다.

내일 오후에는 여의도에서 ‘한화와 함께하는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열린다. 한화그룹이 사회공헌 사업으로 펼치는 이 축제에서는 영국, 중국, 이탈리아, 한국 대표팀이 11만여발의 오색 불꽃으로 가을 밤하늘을 수놓는다. 한강 바지선에 50m 높이의 가상타워 두 대를 설치해 환상적인 ‘타워불꽃쇼’까지 선보인다고 한다. 올해도 관람 명소인 63빌딩 앞과 이촌 한강공원, 한강대교 중앙 노들섬 등은 발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11일에는 인천에서 송도음악불꽃축제, 24~25일에는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부산불꽃축제가 이어진다. 가을밤의 데이트에 폭죽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콘텐츠가 빈약하다거나 하늘에다 헛돈 쓴다는 비판을 넘어야 한다. 프로그램을 국제화하고 고급좌석을 유료화해 외화수익을 올리는 몬트리올 방식 등도 참고할 만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