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가 정신 연구협회(GERA)’는 해마다 각국의 18~64세 성인을 대상으로 창업 의욕률을 설문조사한다. 이들 중 3년 내 창업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의 비율을 구하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주요국의 창업 의욕률을 비교해 보면 이스라엘이 24.0%, 중국 14.4%, 미국 12.2%, 한국 12.1%, 독일 6.8%였다. 일본은 여기에 훨씬 못 미치는 4.1%에 그쳤다. 이처럼 일본의 창업 의욕률이 낮은 것은 저출산·고령화 탓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위험을 감수하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젊은 층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원인 중 하나로 기업가 정신의 공백을 꼽는 학자도 있다. 인구구조와 기업가 정신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제임스 량 중국 베이징대 경영학과 교수도 그런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달 초 홍콩에서 열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모임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MPS)’ 총회에서 ‘인구구조와 기업가 정신’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상관관계를 설명했다. 훼이 왕 베이징대 경영학과 교수, 에드워드 라지에르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공동 작성한 발표문을 요약 정리한다.

기업가 정신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데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세계를 바꿀 만한 기술도 새로운 기업이 생기면서 상용화된다. 기존 기업들은 제품과 생산 기술을 현대화하고 최신화할 수 있다. 하지만 주요한 혁신은 대개 기업가 정신과 새로운 기업의 설립으로 연결된다.

지난 150년 동안의 많은 중요한 발명이 그렇다. 토머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한 뒤 제너럴일렉트릭(GE)을 세웠다. 자동차 발명가인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와 고틸리프 빌헬름 다임러는 다임러-벤츠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전화를 발명한 뒤 AT&T를, 스티브 워즈니악은 개인용컴퓨터(PC)를 발명해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설립했다.

미국의 3분의 1 수준인 일본 창업률

지난 50년 동안 선진국 대부분은 극적인 인구 변화를 경험했다. 일본이 좋은 예다.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일본의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져 1960년대에 이미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인 ‘인구대체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하락했다. 현재 1.3명인 일본의 출산율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출산율 1.3명은 각 세대 인구가 앞으로 60%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다. 1950~1960년대 출산율이 하락해 현재 평균 1.6명인 유럽 국가들은 앞으로 인구가 20% 줄어든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은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인구대체수준을 유지하는 국가다. 중국과 같은 주요 개발도상국도 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에 못 미친다.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는 가까운 미래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상이 미래의 경제 발전에 미치는 충격은 상당할 수 있다. 일본 경제는 1970년과 1980년대에 급성장했다. 당시 많은 경제 전문가는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조만간 미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1991년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난 이후 일본 경제는 20년 동안 침체했다. 이 기간 미국은 왕성한 하이테크산업 발전에 힘입어 경제가 다시 성장했다. 일본의 이 같은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을 놓고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기업가 정신의 공백’과 연결 짓는다.

그 공백의 원인은 뭘까. 인구구조가 답이다. 미국처럼 근로자들의 평균 나이가 젊은 국가의 근로자는 일본과 같이 그렇지 않은 국가의 근로자들보다 더 ‘기업가적’일 수 있다. 미국에서 상위 10대 첨단기술 기업 중 5개는 1985년 이후 설립됐다. 이 회사의 창업자들이 창업할 당시 평균 나이는 28세였다.

반면 일본은 상위 10대 하이테크 기업 중 어느 기업도 지난 40년 내 세워지지 않았다. 1960~1970년대 6~7%였던 일본의 신규 창업률은 1990년대 3%로 떨어졌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의 3분의 1 수준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였다. 최근 창업자를 제외한 18~64세 성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미국은 4.9%가 창업하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답했지만 일본은 그 비율이 1.9%에 그쳤다.

일본의 ‘기업가 정신의 공백’은 기술투자 부족 탓이 아니다. 일본의 연평균 연구개발(R&D) 지출(GDP의 약 3%)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많다. 일본은 상당한 특허권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특허 중 상당수가 사업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일본의 기업가 정신이 뒤처지는 이유는 아이디어나 기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해 사업화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고령화 사회일수록 ‘직위효과’ 커

기업가적인 능력은 창의성과 끼, 두 가지 능력을 말한다. 창의성은 기존의 제품과 생산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는 능력이다. 젊은 근로자일수록 창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개 사업 수완은 근로자가 담당하는 일의 실무적인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하는 일이 단순한 근로자일수록 성공한 기업가가 될 수 있는 사업 수완을 얻을 가능성이 낮다. 의사결정 권한을 사용할 수 있거나, 각기 다른 경영상황을 경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근로자일수록 미래의 경영 수완을 얻을 수 있다. 근로자들이 타고난 창의성과 재능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직장에서 배울 수 있는 사업 수완은 창업에 필수적이다. 그래야 사업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가 정신은 기업 내 ‘직위효과’가 작용할 수 있다. 기업 내 직위는 직원이 창업에 필요한 지적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경험에 노출될 기회에 영향을 미친다. 높은 직위에 있는 근로자일수록 보다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가지면서 의사 결정자들과 더 많이 상호작용할 수 있고,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창업에 유용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된다. 한 국가의 인구구조가 지적 자본 축적과 기업가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기업 안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가능성은 노동력의 연령구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근로자들의 평균 연령이 많다면 높은 자리는 이미 나이 많은 근로자들이 차지하고 있어 젊은 근로자가 그런 기회를 가질 가능성은 낮다. 출산율이 낮아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층이 줄어드는 국가는 근로자들이 기업가가 될 가능성이 낮다. 고령화 국가에서는 젊은 직원들보다 나이 많은 직원의 승진 가능성이 더 높다. 그 결과 창업을 위한 젊은 층의 지적 자본 축적은 더뎌진다. 평균 연령이 낮은 국가일수록 젊은 근로자들이 많기 때문에 기업가 정신 지수도 높다고 볼 수 있다.

정리=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