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新강남' 선두 주자 판교 부동산 시장 르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판교는 “상가 공실률이 70%가 넘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판교 테크노밸리 역시 대부분이 공사 중인데다가 그나마 완공된 건물들 역시 텅 빈 사무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곳이 달라지고 있다. 안랩·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판교 테크노밸리에 자리 잡으면서 인근 주택 시장까지 활력을 되찾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일각에서는 “판교가 강남의 집값을 넘어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신강남권’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판교를 부동산 칼럼니스트 아기곰과 함께 돌아봤다. “이미 강남은 거의 따라잡은 것 같은데요. 앞으로 더 오를 여지도 충분해 보이고요.”
지난 9월 16일 찾아간 판교 테크노밸리 인근의 부동산 중개 사무소. 이곳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는 최근 판교 주택 시장의 매매가를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분위기를 전한다.
실 제로 이 같은 분위기는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 조회 결과에서도 여실히 밝혀진다. 9월 18일을 기준으로 서울시 강남구의 ㎡당 시세는 약 910만 원. 이와 비교해 판교 중에서도 가장 높은 매매가를 보이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은 ㎡당 시세는 710만 원이다.
서울시 서초구와 송파구 등의 시세가 대략 ㎡당 700만 원대, 그 외 다른 지역은 대략 ㎡당 300만 원에서 500만 원대에 형성돼 있는 것과 비교하면 최근 판교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보다 눈길을 끄는 건 전셋값이다. 성남시 백현동의 전셋값은 ㎡당 471만 원. 반면 서울시 강남구는 ㎡당 434만 원이다. 전셋값에서만큼은 ‘판교가 강남보다 더 비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다.
최근 판교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일컬어지는 판교 테크노밸리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동판교와 서판교를 기준으로 뚜렷하게 특성이 구분된다는 점도 이곳이 주목 받는 이유 중 하나다. 판교 내에서도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선호도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판교 테크노밸리 근로자 5만여 명 입주
서 울 강남역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불과 15분 남짓, 판교역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취재에 동행한 부동산 칼럼니스트 아기곰(필명)은 “강남까지는 전철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고 광화문이나 서울역 등 강북 지역도 버스를 이용해 30~40분이면 충분하다”며 “이처럼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다는 게 판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판교 역에서부터 IT 기업들이 들어서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곳곳에 ‘판교 사무실 마지막 입주 기회’, ‘판교 중심 상가, 마감 임박’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 역시 “이 지역의 상가는 이미 입점이 마무리됐기 때문에 현재는 거래량이 많지 않은 편인데도 꾸준히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시장의 높은 관심을 전했다. 아기곰은 “지난해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비어 있는 상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들어 판교 테크노밸리에 IT 기업들의 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상가 지역도 빠르게 활기를 찾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이 지역의 ‘부동산 호황’을 이끄는 데 판교 테크노밸리의 역할이 그만큼 결정적이었다는 얘기다. 이곳이 지금처럼 ‘한국 대표 IT 클러스터’로서 모양새를 갖춘 것은 불과 지난해 말쯤부터다. 2013년 8월 엔씨소프트가 판교R&D센터에 입주를 시작했고 NHN엔터테인먼트 역시 같은 해 7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SK플래닛도 같은 해 12월 입주를 마치고 판교 시대를 개막했다. 이 밖에 현재 이곳에는 안랩·한글과컴퓨터·포스토ICT·한국파스퇴르연구소·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서울사무소 등 국내 대표적인 IT 기업과 연구 기관들이 포진해 있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 판교테크노밸리지원본부가 밝힌 ‘2014년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 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현재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 기업은 총 870개 업체로, 상시 근로자 수만 하더라도 5만8188명으로 집계됐다. 판교 테크노밸리 곳곳에서는 여전히 공사 중인 곳이 적지 않았는데, 2015년까지 추가로 기업들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아 기곰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지의 거리가 가까운 것)’”이라며 “이 사람들의 10분의 1인 5800명만 인근 지역에 전세를 얻거나 집을 구매하길 원한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기곰은 여기까지 설명을 마치고 이곳 기업과 상가 건물 앞에 도로를 점거하고 주차돼 있는 차량들을 가리킨다. 그는 “건물마다 주차장이 모자라 도로에 세워 놓은 차량들이 적지 않다”며 “현재는 출퇴근하고 있는 직원들이 더 많지만 이들이 현재 주거 중인 주택의 전세가 만기가 되거나 가을 이사철이 맞물리면 판교로 주거지를 옮기려는 수요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남·분당권 ‘대체 주거지’로 각광받는 동판교
세 련된 디자인의 IT 업체 건물들이 즐비한 판교 테크노밸리를 지나 육교 하나를 건너자 거리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가장 가까운 주거단지인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봇들마을이다. 군데군데 녹지가 우거져 있어 마치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현재 이곳 아파트의 시세는 119~125㎡(36~38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했을 때 대략 10억 원에서 11억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같은 평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대략 8억 원 정도에 거래되는 송파 지역을 이미 뛰어넘은 수준”이라며 “최근 2~3년간 꾸준히 가격이 높아져 지금과 비슷한 가격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 2월쯤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판교 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 데는 물론 판교 테크노밸리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꾸준히 주택 수요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 강남이나 분당 지역에서 거주하던 이들이 ‘대체 주거지’로 판교를 선택하는 이가 더 많다는 설명이다. 이 부동산 중개업자는 “강남과 분당 지역의 아파트가 노후화되면서 보다 쾌적한 새 아파트로 이주하려는 이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며 “무엇보다 교통편이 잘돼 있어 서울과 접근성이 뛰어나고 인근에 알파돔시티와 현대백화점 같은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는 등 생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게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본적으로 학군이 좋은 분당과 인근에 자리해 있어 생활권을 공유하는 판교 역시 좋은 학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다.
물론 이 지역의 부동산 시장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름 아닌 비행기 소음 문제다. 아기곰은 “인근에 성남비행장이 있어 종종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이 같은 소음을 내곤 한다”며 “실제로 판교 테크노밸리가 자리한 삼평동보다 백현동이 더 비싼 집값을 형성하고 있는 이유 또한 백현동에서 비행기 소음이 더 적게 들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구 임대주택 단지가 많다는 것도 향후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를 견인하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아기곰은 “판교 테크노밸리와의 거리 등 입지 조건을 따져봤을 때 분양 단지보다 영구 임대주택 단지가 훨씬 좋기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장기적으로 판교의 투자 가치를 높게 보는 이유는 따로 있다. 향후 개발 호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분당~수서 간 고속화도로, 녹지 공원화 사업이다. 분당과 판교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 도로 때문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소음에 따른 불만이 적지 않은데, 성남시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 구간에 방음 터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녹지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사업은 올해 11월 착공을 시작해 2년간의 공사를 거쳐 2016년 11월 완공될 예정이다.
녹지 공원 조성 지역 인근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선의 성남역이 개통되는 것 또한 대표적인 개발 호재다. 아기곰은 “GTX 개통은 2020년 목표인데, 성남역은 2016년 가장 먼저 개통되는 구간에 포함돼 있다”며 “GTX역이 개통되면 판교에서 강남까지 10분이 채 안 걸릴 만큼 접근성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화려한 쇼핑센터와 높은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동판교와 비교해 경기도 성남시 운중동 일대의 서판교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또 하나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드문드문 개인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여기저기 비어 있는 부지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띌 만큼 휑한 풍경이 마치 시골 오지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그러나 이곳에는 분양가만 해도 80억 원 이상의 대한민국 최고가 개인 주택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재벌들이 선택한 ‘한국의 베벌리힐스’ 서판교
최 근에는 재벌 2세와 연예인들이 잇따라 이곳에 둥지를 틀며 ‘신흥 부촌’으로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 인물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다. 구자열 LS그룹 회장 또한 운중동에 거주하고 있고 윤주화 제일모직 공동대표도 이들과 이웃이다.
연 예인들 중에서는 배우 신하균이 운중동의 단독주택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다. 홍명보 전 감독은 월드컵을 치르기 이전 이곳 일대에 개인 주택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최고급 타운하우스 역시 중견기업 회장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SK건설의 산운아펠바움에는 배중호 국순당 회장이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SK건설의 운중아펠바움에는 배해동 토니모리 회장과 김준일 락앤락 회장이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탤런트 권상우 씨는 운중동 끝자락에 자리한 르씨트 빌모트 빌라에 자택을 소유하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고가의 개인 주택이 밀집한 지역인 만큼 시세는 천차만별”이라며 “대개 15억 원에서부터 70억 원대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고 설명했다. 아기곰은 “오히려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교통편이 잘 마련돼 있는 동판교 지역과 달리 한적하면서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한 특유의 분위기가 서판교의 투자 가치를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넓은 대지에 주택이 밀집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가 가능한데다가 녹지 비율이 높아 친환경적인 분위기에서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판교 IC를 바로 옆에 끼고 있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강남까지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서울 강남권과의 접근성 또한 뛰어난 편이다.
그는 “이 지역은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편안한 노후 생활을 목적으로 집을 구매하거나 혹은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젊은 정보기술(IT) 기업의 CEO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외부적으로는 철저하게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친환경적인 요소를 충분히 살린 것 또한 이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판교 산운아펠바움 주변만 하더라도 이 같은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산중턱에 외떨어져 자리 잡고 있는 산운아펠바움은 낮은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채 그 내부에 고급 단독주택들이 나란히 둥지를 틀고 앉아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출입구 쪽에 경비가 워낙 삼엄해 철저하게 신분 확인을 거친 후에야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며 “각 주택마다 지하에 4대씩 주차 구역이 따로 마련돼 있어 자동차가 드나드는 것까지 철저하게 사생활 보호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산운아펠바움 앞쪽의 개인 주택들 역시 마찬가지다. 높은 담과 넓은 마당으로 비슷비슷한 외양을 지닌 전통 부촌의 주택들과 달리 이곳의 개인 주택들은 집주인의 개성에 따라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디자인의 건물이 유독 자주 눈에 띈다. 아기곰은 “서판교는 수요층이 워낙 한정적인 만큼 부동산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거나 수요가 급증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신흥 부촌으로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지역적 특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만큼 앞으로 4~5년 뒤를 내다봤을 때 고급 주택 단지로서 가치가 상당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향후 판교는 강남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아기곰은 “개발 호재가 많고 무엇보다 고급 주택의 수요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한동안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국내 부동산 시장의 중심지로서 강남의 상징성을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강남 테헤란밸리의 산업 규모를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아 기곰은 “다만 강남권의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신강남권의 대표 주자로서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며 “동판교와 서판교를 중심으로 주거지역의 특색이 뚜렷하게 나눠지는 만큼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색깔로 향후 투자 가치를 더욱 높여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판교 테크노밸리 역시 대부분이 공사 중인데다가 그나마 완공된 건물들 역시 텅 빈 사무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곳이 달라지고 있다. 안랩·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판교 테크노밸리에 자리 잡으면서 인근 주택 시장까지 활력을 되찾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일각에서는 “판교가 강남의 집값을 넘어서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신강남권’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판교를 부동산 칼럼니스트 아기곰과 함께 돌아봤다. “이미 강남은 거의 따라잡은 것 같은데요. 앞으로 더 오를 여지도 충분해 보이고요.”
지난 9월 16일 찾아간 판교 테크노밸리 인근의 부동산 중개 사무소. 이곳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는 최근 판교 주택 시장의 매매가를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분위기를 전한다.
실 제로 이 같은 분위기는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 조회 결과에서도 여실히 밝혀진다. 9월 18일을 기준으로 서울시 강남구의 ㎡당 시세는 약 910만 원. 이와 비교해 판교 중에서도 가장 높은 매매가를 보이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은 ㎡당 시세는 710만 원이다.
서울시 서초구와 송파구 등의 시세가 대략 ㎡당 700만 원대, 그 외 다른 지역은 대략 ㎡당 300만 원에서 500만 원대에 형성돼 있는 것과 비교하면 최근 판교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보다 눈길을 끄는 건 전셋값이다. 성남시 백현동의 전셋값은 ㎡당 471만 원. 반면 서울시 강남구는 ㎡당 434만 원이다. 전셋값에서만큼은 ‘판교가 강남보다 더 비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다.
최근 판교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일컬어지는 판교 테크노밸리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동판교와 서판교를 기준으로 뚜렷하게 특성이 구분된다는 점도 이곳이 주목 받는 이유 중 하나다. 판교 내에서도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선호도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판교 테크노밸리 근로자 5만여 명 입주
서 울 강남역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불과 15분 남짓, 판교역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취재에 동행한 부동산 칼럼니스트 아기곰(필명)은 “강남까지는 전철로 30분이 채 걸리지 않고 광화문이나 서울역 등 강북 지역도 버스를 이용해 30~40분이면 충분하다”며 “이처럼 서울과의 접근성이 좋다는 게 판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판교 역에서부터 IT 기업들이 들어서 있는 판교 테크노밸리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곳곳에 ‘판교 사무실 마지막 입주 기회’, ‘판교 중심 상가, 마감 임박’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 역시 “이 지역의 상가는 이미 입점이 마무리됐기 때문에 현재는 거래량이 많지 않은 편인데도 꾸준히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시장의 높은 관심을 전했다. 아기곰은 “지난해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비어 있는 상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들어 판교 테크노밸리에 IT 기업들의 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상가 지역도 빠르게 활기를 찾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이 지역의 ‘부동산 호황’을 이끄는 데 판교 테크노밸리의 역할이 그만큼 결정적이었다는 얘기다. 이곳이 지금처럼 ‘한국 대표 IT 클러스터’로서 모양새를 갖춘 것은 불과 지난해 말쯤부터다. 2013년 8월 엔씨소프트가 판교R&D센터에 입주를 시작했고 NHN엔터테인먼트 역시 같은 해 7월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SK플래닛도 같은 해 12월 입주를 마치고 판교 시대를 개막했다. 이 밖에 현재 이곳에는 안랩·한글과컴퓨터·포스토ICT·한국파스퇴르연구소·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서울사무소 등 국내 대표적인 IT 기업과 연구 기관들이 포진해 있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 판교테크노밸리지원본부가 밝힌 ‘2014년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 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현재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 기업은 총 870개 업체로, 상시 근로자 수만 하더라도 5만8188명으로 집계됐다. 판교 테크노밸리 곳곳에서는 여전히 공사 중인 곳이 적지 않았는데, 2015년까지 추가로 기업들의 입주가 예정돼 있다.
아 기곰은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지의 거리가 가까운 것)’”이라며 “이 사람들의 10분의 1인 5800명만 인근 지역에 전세를 얻거나 집을 구매하길 원한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기곰은 여기까지 설명을 마치고 이곳 기업과 상가 건물 앞에 도로를 점거하고 주차돼 있는 차량들을 가리킨다. 그는 “건물마다 주차장이 모자라 도로에 세워 놓은 차량들이 적지 않다”며 “현재는 출퇴근하고 있는 직원들이 더 많지만 이들이 현재 주거 중인 주택의 전세가 만기가 되거나 가을 이사철이 맞물리면 판교로 주거지를 옮기려는 수요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남·분당권 ‘대체 주거지’로 각광받는 동판교
세 련된 디자인의 IT 업체 건물들이 즐비한 판교 테크노밸리를 지나 육교 하나를 건너자 거리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가장 가까운 주거단지인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봇들마을이다. 군데군데 녹지가 우거져 있어 마치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현재 이곳 아파트의 시세는 119~125㎡(36~38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했을 때 대략 10억 원에서 11억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같은 평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대략 8억 원 정도에 거래되는 송파 지역을 이미 뛰어넘은 수준”이라며 “최근 2~3년간 꾸준히 가격이 높아져 지금과 비슷한 가격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 2월쯤부터”라고 말했다.
그는 “판교 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 데는 물론 판교 테크노밸리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꾸준히 주택 수요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 강남이나 분당 지역에서 거주하던 이들이 ‘대체 주거지’로 판교를 선택하는 이가 더 많다는 설명이다. 이 부동산 중개업자는 “강남과 분당 지역의 아파트가 노후화되면서 보다 쾌적한 새 아파트로 이주하려는 이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며 “무엇보다 교통편이 잘돼 있어 서울과 접근성이 뛰어나고 인근에 알파돔시티와 현대백화점 같은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는 등 생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게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본적으로 학군이 좋은 분당과 인근에 자리해 있어 생활권을 공유하는 판교 역시 좋은 학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다.
물론 이 지역의 부동산 시장에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름 아닌 비행기 소음 문제다. 아기곰은 “인근에 성남비행장이 있어 종종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이 같은 소음을 내곤 한다”며 “실제로 판교 테크노밸리가 자리한 삼평동보다 백현동이 더 비싼 집값을 형성하고 있는 이유 또한 백현동에서 비행기 소음이 더 적게 들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구 임대주택 단지가 많다는 것도 향후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를 견인하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아기곰은 “판교 테크노밸리와의 거리 등 입지 조건을 따져봤을 때 분양 단지보다 영구 임대주택 단지가 훨씬 좋기 때문에 불만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장기적으로 판교의 투자 가치를 높게 보는 이유는 따로 있다. 향후 개발 호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분당~수서 간 고속화도로, 녹지 공원화 사업이다. 분당과 판교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 도로 때문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소음에 따른 불만이 적지 않은데, 성남시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 구간에 방음 터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녹지 공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사업은 올해 11월 착공을 시작해 2년간의 공사를 거쳐 2016년 11월 완공될 예정이다.
녹지 공원 조성 지역 인근에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A선의 성남역이 개통되는 것 또한 대표적인 개발 호재다. 아기곰은 “GTX 개통은 2020년 목표인데, 성남역은 2016년 가장 먼저 개통되는 구간에 포함돼 있다”며 “GTX역이 개통되면 판교에서 강남까지 10분이 채 안 걸릴 만큼 접근성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화려한 쇼핑센터와 높은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동판교와 비교해 경기도 성남시 운중동 일대의 서판교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또 하나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드문드문 개인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여기저기 비어 있는 부지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띌 만큼 휑한 풍경이 마치 시골 오지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그러나 이곳에는 분양가만 해도 80억 원 이상의 대한민국 최고가 개인 주택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재벌들이 선택한 ‘한국의 베벌리힐스’ 서판교
최 근에는 재벌 2세와 연예인들이 잇따라 이곳에 둥지를 틀며 ‘신흥 부촌’으로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중 대표적 인물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다. 구자열 LS그룹 회장 또한 운중동에 거주하고 있고 윤주화 제일모직 공동대표도 이들과 이웃이다.
연 예인들 중에서는 배우 신하균이 운중동의 단독주택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다. 홍명보 전 감독은 월드컵을 치르기 이전 이곳 일대에 개인 주택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최고급 타운하우스 역시 중견기업 회장님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SK건설의 산운아펠바움에는 배중호 국순당 회장이 거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SK건설의 운중아펠바움에는 배해동 토니모리 회장과 김준일 락앤락 회장이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탤런트 권상우 씨는 운중동 끝자락에 자리한 르씨트 빌모트 빌라에 자택을 소유하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고가의 개인 주택이 밀집한 지역인 만큼 시세는 천차만별”이라며 “대개 15억 원에서부터 70억 원대에 이르는 것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고 설명했다. 아기곰은 “오히려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교통편이 잘 마련돼 있는 동판교 지역과 달리 한적하면서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한 특유의 분위기가 서판교의 투자 가치를 높이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넓은 대지에 주택이 밀집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가 가능한데다가 녹지 비율이 높아 친환경적인 분위기에서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판교 IC를 바로 옆에 끼고 있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강남까지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서울 강남권과의 접근성 또한 뛰어난 편이다.
그는 “이 지역은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편안한 노후 생활을 목적으로 집을 구매하거나 혹은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젊은 정보기술(IT) 기업의 CEO들이 많이 찾고 있다”며 “외부적으로는 철저하게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친환경적인 요소를 충분히 살린 것 또한 이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판교 산운아펠바움 주변만 하더라도 이 같은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산중턱에 외떨어져 자리 잡고 있는 산운아펠바움은 낮은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채 그 내부에 고급 단독주택들이 나란히 둥지를 틀고 앉아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출입구 쪽에 경비가 워낙 삼엄해 철저하게 신분 확인을 거친 후에야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며 “각 주택마다 지하에 4대씩 주차 구역이 따로 마련돼 있어 자동차가 드나드는 것까지 철저하게 사생활 보호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산운아펠바움 앞쪽의 개인 주택들 역시 마찬가지다. 높은 담과 넓은 마당으로 비슷비슷한 외양을 지닌 전통 부촌의 주택들과 달리 이곳의 개인 주택들은 집주인의 개성에 따라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디자인의 건물이 유독 자주 눈에 띈다. 아기곰은 “서판교는 수요층이 워낙 한정적인 만큼 부동산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거나 수요가 급증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신흥 부촌으로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지역적 특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만큼 앞으로 4~5년 뒤를 내다봤을 때 고급 주택 단지로서 가치가 상당히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향후 판교는 강남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아기곰은 “개발 호재가 많고 무엇보다 고급 주택의 수요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한동안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국내 부동산 시장의 중심지로서 강남의 상징성을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규모가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강남 테헤란밸리의 산업 규모를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아 기곰은 “다만 강남권의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신강남권의 대표 주자로서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며 “동판교와 서판교를 중심으로 주거지역의 특색이 뚜렷하게 나눠지는 만큼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색깔로 향후 투자 가치를 더욱 높여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