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나와 한경의 특별한 인연] 수십년 애독자들 "한경 펼치면 경제 한눈에…정책·사업 靈感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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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호 "한국경제 이름 제안"·최경환 "한경서 경제현장 이해"
신제윤 "공직 34년 열혈독자"·정갑영, 테샛 출제위원장 인연
강만수, 다산칼럼 7년 집필·최광, 칼럼 58편 기고 '생생'
장충기 "경제 과외 선생님"·김영근, 기자생활 20년 보내
허창수 "한국 도전정신 키워"·김영태 "홍보맨 시절 늘 긴장"
이희범, 히든챔피언 기업 발굴·김도연 "스트롱코리아 기획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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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다산칼럼 7년 집필·최광, 칼럼 58편 기고 '생생'
장충기 "경제 과외 선생님"·김영근, 기자생활 20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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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범, 히든챔피언 기업 발굴·김도연 "스트롱코리아 기획 보람"
“34년 전 공직생활을 시작한 뒤 매일 아침 한경을 읽으면서 얻은 깊이 있는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해왔습니다. 올 1월엔 ‘맛있는 만남’에서 솔직한 인터뷰로 금융인들과 폭넓은 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신제윤 금융위원장)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해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경제신문을 읽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한경만큼 충실한 기업경영의 교본은 따로 없습니다.”(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창간 50주년을 맞은 한국경제신문은 반백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폭넓고 깊은 인연을 한국 사회 곳곳에서 만들어왔다. 수십 년을 함께한 애독자로서, 때로는 운명을 함께한 동업자로서 각계의 주요 독자들이 ‘나와 한경의 특별한 인연’을 주제로 글을 보내왔다.
‘한경’ 제호 뒷얘기…한경서 폭넓은 경험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은 ‘한국경제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맺었다. 강 회장은 “한국경제신문의 전신인 현대경제일보가 1980년 제호를 바꾸려고 할 때 당시 김입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게 ‘한국경제’라는 이름을 제안했다”면서 “일본의 대표적 경제신문인 ‘일본경제’에 착안해 한국에서 가장 으뜸가는 경제신문이 되라는 바람을 담았다”며 제호 탄생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한경 가족으로서 ‘피’를 나눈 인연도 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9년 20년간의 경제기획원 생활을 접고 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편집국 부국장, 논설위원으로 2004년까지 활동했다.
최 부총리는 “관료의 길을 떠나 언론에 뛰어들 당시 선택을 이해 못하는 분도 많았다. 하지만 정책으로만 접했던 경제를 현장에서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세계적인 석학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영근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한경에서 20년 동안 일하며 특종상을 20회 수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기사를 썼는지 부끄럽다”며 “단 3개월만이라도 취재기자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칼럼 기고하며 ‘동지’로 성장
글도 인연의 중요한 연결고리다. 1974년 재무부 사무관 시절 한경을 처음 만났다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3년 한경에 칼럼을 쓰기 시작해 야인 시절 7년 동안 다산칼럼을 집필했다”며 “한경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온 동지”라고 했다.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1981년 미국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기고한 매체가 한경”이라며 “총 552편의 기고 가운데 58편을 한경에 썼다”고 회고했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2007년 말 테샛 출제위원장을 수락하며 동업자가 됐다”며 “경제 선진화를 위해 시장경제 원리를 대다수 국민이 충분히 이해해야 하는데 한경은 경제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무엇인지를 쉽고 명쾌하게 제시해왔다”고 평했다.
기업인에겐 경제 교과서 역할
한국경제신문은 기업인에게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삼성에서 35년째 일해온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은 “1978년 늦가을 군복무를 마치고 삼성물산에 들어갔을 때 난 무식한 상사맨이었다”며 “매일 퇴근길에 신문 가판대에서 한경을 사서 읽으며 세상 물정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구재상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 대표, 권선주 기업은행장, 권오용 효성그룹 고문,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은 대학생 시절부터 한경을 ‘경제 과외 선생님’ 삼아 읽으면서 한경의 팬이 됐다고 했다.
박인구 부회장은 “행정고시를 공부하던 시절, 상공부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때 매일같이 한국경제신문을 보며 경제 분야 주요 이슈를 공부했다”며 “경영인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돼 주기도 했다”고 썼다. 정진행 사장은 “한경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는 고마운 매체”라며 “신문 읽기를 즐기지 않는 젊은 직원들에게도 한경을 읽도록 적극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박종수 회장은 “최고의 상품을 만들면 어떤 힘든 여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게 10년 가까이 증권사 사장을 지내며 터득한 결론”이라며 “콘텐츠 경쟁력이 뛰어난 한경을 독자들이 찾는 이유”라고 평가했다.
오너 경영인 가운데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한경은 국내 최초로 자본과 경영이 분리된 신문”이라며 “기업가정신 시리즈 등으로 한국 사회에 도전정신을 키워왔다”고 높게 평가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006년 금호타이어 임직원과의 청계산 산행에 한경 취재기자가 평상복 차림으로 찾아와 산행을 함께했다”며 “기자의 뜨거운 열정과 발품을 들여 쓴 기사를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홍보하며 사업하며 한경의 팬이 돼
기업의 홍보 담당자들은 최일선에서 한경을 지켜보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다. 김영태 SK그룹 사장은 “SK 홍보기업문화실장으로 일하던 2007년은 한경의 특종 보도로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면서도 “한경의 신년기획은 기업을 공격하는 외풍을 막아준 울타리이자 성장을 도와주는 사다리였으며 기업을 스스로 고칠 수 있게 하는 장도리였다”고 평가했다.
이순동 한국광고총연합회 회장은 삼성전자의 홍보담당으로,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은 상업은행 비서실에서 일하며 한경 기사와 함께 회사의 성장을 지켜봤다고 했다.
한경과 사업을 함께하며 운명공동체가 된 인연도 있다.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무역협회 회장 시절 한경과 함께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상’을 만들어 한국의 히든챔피언을 발굴했고, 김도연 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은 이공계 살리기 기획인 ‘스트롱코리아’에 힘을 보탠 게 보람스런 일이었다고 했다. 김창호 한국스포츠산업협회 부회장은 서울국제스포츠산업포럼을 공동 개최한 인연을 소개했다. 이들을 포함해 한정된 지면에 다 담지 못한 각계 독자 50명의 특별한 인연은 이달 말 발간될 ‘한국경제신문 50년사’에 상세히 실린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새벽 5시에 기상해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경제신문을 읽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한경만큼 충실한 기업경영의 교본은 따로 없습니다.”(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창간 50주년을 맞은 한국경제신문은 반백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폭넓고 깊은 인연을 한국 사회 곳곳에서 만들어왔다. 수십 년을 함께한 애독자로서, 때로는 운명을 함께한 동업자로서 각계의 주요 독자들이 ‘나와 한경의 특별한 인연’을 주제로 글을 보내왔다.
‘한경’ 제호 뒷얘기…한경서 폭넓은 경험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회장은 ‘한국경제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맺었다. 강 회장은 “한국경제신문의 전신인 현대경제일보가 1980년 제호를 바꾸려고 할 때 당시 김입삼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에게 ‘한국경제’라는 이름을 제안했다”면서 “일본의 대표적 경제신문인 ‘일본경제’에 착안해 한국에서 가장 으뜸가는 경제신문이 되라는 바람을 담았다”며 제호 탄생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한경 가족으로서 ‘피’를 나눈 인연도 있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9년 20년간의 경제기획원 생활을 접고 한국경제신문 전문위원, 편집국 부국장, 논설위원으로 2004년까지 활동했다.
최 부총리는 “관료의 길을 떠나 언론에 뛰어들 당시 선택을 이해 못하는 분도 많았다. 하지만 정책으로만 접했던 경제를 현장에서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세계적인 석학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영근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한경에서 20년 동안 일하며 특종상을 20회 수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기사를 썼는지 부끄럽다”며 “단 3개월만이라도 취재기자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칼럼 기고하며 ‘동지’로 성장
글도 인연의 중요한 연결고리다. 1974년 재무부 사무관 시절 한경을 처음 만났다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93년 한경에 칼럼을 쓰기 시작해 야인 시절 7년 동안 다산칼럼을 집필했다”며 “한경은 나라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온 동지”라고 했다.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1981년 미국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기고한 매체가 한경”이라며 “총 552편의 기고 가운데 58편을 한경에 썼다”고 회고했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2007년 말 테샛 출제위원장을 수락하며 동업자가 됐다”며 “경제 선진화를 위해 시장경제 원리를 대다수 국민이 충분히 이해해야 하는데 한경은 경제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 무엇인지를 쉽고 명쾌하게 제시해왔다”고 평했다.
기업인에겐 경제 교과서 역할
한국경제신문은 기업인에게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삼성에서 35년째 일해온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은 “1978년 늦가을 군복무를 마치고 삼성물산에 들어갔을 때 난 무식한 상사맨이었다”며 “매일 퇴근길에 신문 가판대에서 한경을 사서 읽으며 세상 물정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구재상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 대표, 권선주 기업은행장, 권오용 효성그룹 고문,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은 대학생 시절부터 한경을 ‘경제 과외 선생님’ 삼아 읽으면서 한경의 팬이 됐다고 했다.
박인구 부회장은 “행정고시를 공부하던 시절, 상공부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때 매일같이 한국경제신문을 보며 경제 분야 주요 이슈를 공부했다”며 “경영인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돼 주기도 했다”고 썼다. 정진행 사장은 “한경은 우리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는 고마운 매체”라며 “신문 읽기를 즐기지 않는 젊은 직원들에게도 한경을 읽도록 적극 추천하고 있다”고 했다.
박종수 회장은 “최고의 상품을 만들면 어떤 힘든 여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게 10년 가까이 증권사 사장을 지내며 터득한 결론”이라며 “콘텐츠 경쟁력이 뛰어난 한경을 독자들이 찾는 이유”라고 평가했다.
오너 경영인 가운데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한경은 국내 최초로 자본과 경영이 분리된 신문”이라며 “기업가정신 시리즈 등으로 한국 사회에 도전정신을 키워왔다”고 높게 평가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006년 금호타이어 임직원과의 청계산 산행에 한경 취재기자가 평상복 차림으로 찾아와 산행을 함께했다”며 “기자의 뜨거운 열정과 발품을 들여 쓴 기사를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홍보하며 사업하며 한경의 팬이 돼
기업의 홍보 담당자들은 최일선에서 한경을 지켜보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다. 김영태 SK그룹 사장은 “SK 홍보기업문화실장으로 일하던 2007년은 한경의 특종 보도로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면서도 “한경의 신년기획은 기업을 공격하는 외풍을 막아준 울타리이자 성장을 도와주는 사다리였으며 기업을 스스로 고칠 수 있게 하는 장도리였다”고 평가했다.
이순동 한국광고총연합회 회장은 삼성전자의 홍보담당으로,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은 상업은행 비서실에서 일하며 한경 기사와 함께 회사의 성장을 지켜봤다고 했다.
한경과 사업을 함께하며 운명공동체가 된 인연도 있다.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무역협회 회장 시절 한경과 함께 ‘한국을 빛낸 이달의 무역인상’을 만들어 한국의 히든챔피언을 발굴했고, 김도연 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은 이공계 살리기 기획인 ‘스트롱코리아’에 힘을 보탠 게 보람스런 일이었다고 했다. 김창호 한국스포츠산업협회 부회장은 서울국제스포츠산업포럼을 공동 개최한 인연을 소개했다. 이들을 포함해 한정된 지면에 다 담지 못한 각계 독자 50명의 특별한 인연은 이달 말 발간될 ‘한국경제신문 50년사’에 상세히 실린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