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바닷가재
유럽 사람들이 바닷가재(lobster)를 고급요리로 즐긴 것은 2000여년 전부터였다. 1세기 로마에서 나온 요리책에도 조리법이 자세히 적혀 있다. 남성의 힘을 강하게 해주고 여성의 성적 매력을 높인다고 해서 ‘사랑의 묘약’으로도 불렸다. 콜레스테롤이 낮고 단백질과 미네랄,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노화방지, 피부미용 효과까지 있으니 그럴 만하다. 16~17세기 프랑스와 네덜란드 귀족들은 브르타뉴 해안의 최고급 바닷가재로 ‘왕족의 성찬’을 즐겼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19세기가 돼서야 겨우 식탁에 올랐다. 그 전엔 하인이나 죄수들이 먹는 ‘가난뱅이 치킨’에 불과했다. 인디언은 아예 비료로 썼다. 그러다 경제 성장과 함께 북동부 메인주(州)의 바닷가재 맛이 좋다는 게 알려져 전국에 퍼졌다. 지금도 메인주는 미국 바닷가재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산지다. 한때 남획 때문에 씨가 마를 위기까지 갔다가 어부들이 통발 놓는 순서와 규칙 등을 서로 조율하며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을 극복한 일화로 더욱 유명해졌다.

대서양과 맞닿은 이곳의 스토닝턴 섬 부근에서 잡힌 바닷가재는 수온 2~3도의 찬 수조로 옮겨졌다 비행기에 실려 직송된다. 이렇게 국내에 수입된 메인주 바닷가재가 2년 새 9배 이상 늘어났다. 미국산 전체로도 2011년 244만달러에서 지난해 1806만달러어치로 6.4배 늘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귀족 식품’을 반 값에 즐기게 됐다. 대형 마트들의 최저가 경쟁도 작용했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한다. 20%였던 관세가 매년 4%포인트씩 떨어져 8%까지 낮아졌고 2016년엔 완전히 없어진다. FTA 발효 전 마리(500g)당 2만5000~3만원이던 시세는 벌써 1만~2만원 선까지 내렸다. 지난해 꽃게철이 끝난 10월 중순에 대형마트들이 바닷가재 할인 경쟁을 벌였는데 올해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미국산이 늘면서 그동안 우위를 보이던 캐나다산은 다소 주춤한 상태다. 올 상반기 미국산이 703t으로 전년(203t)보다 246% 늘어난 반면 캐나다산은 730t으로 작년(801t)보다 8.9% 줄었다. 하지만 내년에 한·캐나다 FTA가 발효되면 20% 관세가 즉시 폐지돼 미국산보다 싸지고 수입도 다시 늘 전망이다. 우리는 앉아서 바닷가재의 풍미를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게 됐고…. 대게의 소비자가 중장년층인 것과 달리 바닷가재를 찾는 사람은 20~30대가 많다니 앞으로는 연중 할인전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