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적 아비투스 갖춰야 가능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6000달러 남짓했는데, 이를 5만달러로 끌어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해마다 3%씩 성장하면 약 24년, 4%씩 성장해도 대략 18년이 걸린다. 환율 변수가 있겠지만 당장 7년째 2만달러 언저리에서 벗어나는 것도 버겁다. 하지만 소득 5만달러는 단순히 지금의 두 배 소득을 뜻하는 게 아니다. 국민 개개인과 한국 사회가 5만달러의 아비투스(habitus·사회적 관행)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경제적 번영에 수반되는 의식과 제도, 관행의 선진화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5만달러 선진국들의 지금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5만달러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경제적 자유가 고도로 보장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적 자유가 보장될 때 창의가 넘쳐나고, 창의가 넘칠 때 혁신이 나온다. 지난 150년간 미국 경제발전사가 이를 웅변적으로 입증한다.
경제적 자유가 창의·혁신 원천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꾼 혁신적인 발명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876년 전화, 1882년 전기에 이어 아스피린(1899년), 자동차(대량생산·1908년), TV(1927년), 컴퓨터(1939년), 레이저(1958년), 산업용 로봇(1961년), 이메일(1971년), 인터넷(1989년), 태블릿(2010년) 등이 모두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창의가 넘치고 그런 성과를 보상하는 체제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혁신하는 경제는 기업과 기업가정신이 이끌어 간다. 포드, 록펠러부터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기업가정신이 혁신을 낳고, 기업은 경제발전을 견인했다.
우리도 정주영 이병철 등 혁신적인 기업가들을 가진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는 시장경제에 대한 몰이해와 반기업정서, 정치에 의한 경제적 자유의 훼손으로 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명분이 실질을 지배하고, 규제가 창의를 옥죄고, 분배욕구가 성공을 시기하는 가치관의 아노미 시대다. 2만달러의 덫이 빚어낸 정체성 증후군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저출산 고령화로 성장동력이 식어가는 판국이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경제대도약 선언문에서 제시한 네 가지 실천과제는 더할 나위 없이 촌음을 다툰다. 기업이 뛰고 기업가들이 앞장서 노력하는 사회를 이루고, 규제를 혁파해 자유시장의 선진적 질서를 만들며, 노사협력을 바탕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한 안정성을 확보하고, 경제대도약에 대한 국민적 의지가 총결집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뭘 해야 할지 모르지 않는다. 군림하지 않고 국민에 봉사하는 정치 선진화, 특권이나 반칙이 발붙일 수 없는 법치 확립, 혁신과 노력이 보상받는 경제시스템 구축, 착취와 지대추구를 근절하는 규제 혁파가 필수적이다.
대중주의 함정 정면돌파하자
지금의 한국 경제는 완성된 상태도, 만족할 수준도 아니다. 현실은 답답하고, 갈등의 골은 메우기 불가능할 정도로 깊어지고 있다. 사안마다 나라가 두 쪽 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다반사다. 활력 잃은 경제에서 더 많은 일자리, 더 나은 복지가 나올 리 만무하다. 절대적으로 성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 이대로는 2만달러 덫에 걸려 영원히 이류국가를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정치 포퓰리즘이 빚어낸 대중주의의 함정을 정면돌파해야 한다.
반세기 전 전쟁의 폐허 위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경제를 일으켰다면, 이제는 창의와 혁신으로 경제를 대도약시켜 세계 일류국가를 향해 나아갈 때다. 더 이상 혼돈과 위기 속에서 한숨만 짓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경제대도약 선언을 계기로 한경도 앞장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