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남 주려고 도자기 굽죠 … 받는 사람이 좋아하면 나도 힐링"
남호기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65)은 주말이면 경기 이천에 있는 도자기 공방을 찾는다. 공방에 도착하면 먼저 옷을 갈아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기 시작한다. 접시 등 모양이 갖춰지면 가마에 넣어 굽는다. 어느 정도 구워지면 꺼내 유약을 발라 도자기 표면에 안료(顔料)로 각종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넣는다. 그림과 글씨가 완성되면 가마에 넣고 다시 굽는다. 모든 단계마다 정성을 들인다.

그는 2011년 9월15일 ‘전력대란’이 발생하고 2개월 후인 11월 전력거래소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전력대란을 수습할 ‘구원투수’로 투입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과 전력업계 관계자들은 한국남부발전 사장에 있던 남 이사장이 “끌려온 것”이라고 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여름엔 불량부품 탓에 원자력발전소 3기가 가동중단됐다. 사상 최악의 전력수급난으로 산업부 장관이 전력 부족을 설명하고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국민들이 사용하는 전력의 수요예측과 공급입찰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은 남 이사장의 스트레스도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 이사장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책은 도자기였다.

남 이사장이 도자기에 푹 빠진 건 취미 이상이다. 도자기 선물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더 즐겁다고 했다. 그는 “내가 준 선물로 상대방이 힐링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도자기에 쓰는 글씨와 그림은 선물할 사람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08~2011년 남부발전 사장으로 재직할 때. 당시 요르단에 발전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요르단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다. 어떤 도자기 선물을 할까 궁리하다가 무릎을 쳤다. “중동 사람들이 금을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고 금가루로 요르단 방문객의 이름을 쓴 도자기를 줬더니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고.

최근에는 베개로 쓸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어 은퇴하는 임직원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돼지 모양의 기둥을 만들어 목침처럼 빚는다. 받침대엔 꽃과 용, 똥 등을 그려넣는다. 딱딱하지 않게 수건을 올리고 숙면을 하면 도자기에 그린 것들이 나타나는 길몽을 꿀 수 있다는 바람에서다. 직원이 승진하거나 직원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면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내용의 글씨나 그림을 넣는다.

도자기에 애착을 가지다 보니 도자기를 보는 그의 안목도 깊어졌다. 한국 중국 일본의 도자기를 모양만 보고 구별하는 것을 보고 박물관 큐레이터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옛날 유럽인들이 도자기 기술이 좋은 중국에서 도자기를 많이 사 갔습니다. 중국인들은 도자기 무게에 따라 금을 받았어요. 중국 도자기가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보다 두껍고 무거운 역사적 배경이죠. 일본은 도자기 표면의 여백을 가만두지 않는 문화입니다. 여백을 그림이나 무늬로 채우지 못해 안달날 정도입니다. 반면 한국은 도자기 표면의 여백이 많습니다. 여백 자체도 아름답다고 보는 거죠. 그게 한·중·일 도자기의 큰 차이예요.”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