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유리감옥과 인숭무레기
이누이트 족은 어릴 때부터 길 찾는 기술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바친다. 칼바람 부는 설원에서 길을 잃으면 곧 목숨을 잃는다는 걸 알기에 훈련도 목숨 걸고 받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망 사고가 자주 생겼다. 개썰매 대신에 설상차를 타고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얼어죽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위성항법장치(GPS) 기기가 고장나거나 배터리가 얼어붙기라도 하면 속수무책이다. 길 찾는 기술을 익히지 않은 대가다.

항공기 조종사들도 마찬가지다. 자동항법장치에 과도하게 의존하다 위기 대처 능력을 잃곤 한다. 2009년 콜건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도 자동조종장치 고장에 당황한 조종사들이 기체를 컨트롤하지 못해 당한 참사였다. 같은 해의 에어버스 A330기 추락 역시 속력을 잃은 비행기를 수동 조종하지 못한 조종사 과실로 228명이 다 죽었다. 이 때문에 미국연방항공국은 지난해 항공사들에 ‘조종사들의 수동 비행을 홍보하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디지털 스크린에 갇힌 사람들

왜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과신한다. 소프트웨어 맹신은 지식과 가치의 개념까지 무너뜨린다. 하루 종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흥분하고 삿대질하고 자신을 갉는다. 세계적인 디지털 사상가 니콜라스 카는 이런 현대인을 ‘디지털 스크린에 포획된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는 《유리감옥》이라는 책에서 스마트 테크놀로지 시대의 수많은 비극을 경고하며 “유리감옥으로부터 하루빨리 탈출하라”고 조언한다.

여태까지는 컴퓨터의 능력이 알고리즘화된 형식지(形式知)에 그친다고 생각했다. 상황 파악과 판단 능력까지 갖춘 암묵지(暗默知)는 인간만이 가졌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젠 무인자동차와 드론이 밤낮을 누비는 세상이 돼 버렸다. 스마트 기기의 진화는 끝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 울타리 친 감옥에서 편향성과 몰개성의 수인(囚人)으로 전락하고 있다.

파편화된 정보들이 난무하는 유리감옥 안에서는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지력 저하는 윤리와 도덕, 가치의 타락으로 이어진다. 서사(敍事)가 사라진 시대의 슬픔은 혼자만 겪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 공범이다. 서로가 스마트폰 중독자를 만들고, 디지털 치매를 조장하며, 얕은 사고의 늪으로 밀어넣는다. 자녀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던 스티브 잡스는 이미 유리감옥의 폐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까지 잃어버려

SNS에는 전문가보다 ‘얼치기 약장수’가 더 많다. 학문 대가보다 반쪽 지식인이 판친다. 귀 얇은 사람들은 그걸 앞다퉈 퍼나르고…. 남의 글이나 기사에 다는 댓글도 잔인하다. 뉴스 뒤에도 툭하면 ‘이런 기레기(기자+쓰레기) 같은’ 식의 ‘~레기’ 시리즈로 댓글을 도배한다. 누워서 침 뱉기다. 이러다 우리 모두 진짜 ‘인숭무레기(어리석어 사리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가 돼 버리지나 않을지.

유리감옥 속의 난장판이 따로 없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남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것은 그들의 실수와 잘못을 찾아내고 지적하기가 쉽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속성을 간파하고 나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하긴 생각이 깊고 속이 꽉 찬 사람들은 모두 감옥 밖에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사고와 글에는 품격이 있고 향기도 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