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國監, 기업인 혼내기 舊態 벗어야
올해 국정감사가 7일 시작됐다. 오는 27일까지 20일간 672곳의 대상기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벌인다. 이는 지난해 630개 기관보다 42곳 늘어난 것으로 1988년 국감 부활 이래 최대 규모다. 하지만 실제 감사기간은 주말을 제외하면 2주에 불과하다. 14개 상임위원회가 하루에 평균 4개 기관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동안 세월호 특별검사를 둘러싼 정쟁에 휩싸인 정치권이 얼마나 국감을 내실있게 준비했는지 의문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국감은 준비되지 않은 빈 수레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수많은 기업인을 국감장에 불러내는 잘못된 행태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인 중 국감에 불러서 꼭 따져봐야 할 사안과 관련된 증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까지 기업인 증인들에게 이뤄진 질의와 답변 내용을 보면 과연 꼭 이들이 국회에 직접 와서 답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하는 강한 의문이 생긴다. 바쁜 기업인들이 국회에 와서 오랜 시간 대기한다는 것은 경제회복을 위해 사용해야 할 중요한 경영자원의 심각한 낭비다.

국감은 정부정책과 국정현안에 대한 감사가 목적이다. 국회가 민간 기업인을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세울 경우는 공적 자금이 투입된 기업이라든지, 국가예산이 투입된 사업을 하고 있다든지 하는 경우처럼 공적인 이슈가 있는 기업에 국한해야 할 것이다. 순수 민간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는 과정 및 이에 따른 결과 등에 국회가 개입해 감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기업의 편법, 탈법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일단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검찰 같은 국가기관에 맡기고, 국회는 이들 기관이 효과적으로 또 공정하고 적절하게 이런 사안들을 처리했는지를 감사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재벌총수나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증인으로 세우려고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재벌과 대기업 때리기는 여야 모두에게 부담 없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먼저 때리는 의원이 언론에 선명성 높은 의원으로 부각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국감장에 민간 기업인을 불러 질책하고 호통치는 행위의 더 큰 폐해는 이런 질책과 비판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검증하는 메커니즘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질책과 비판임에도 언론이 그대로 이를 받아 보도한다면 그 피해는 해당기업에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이다.

국감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절실해 보인다. 좀 더 내실있게 준비된 국감, 민간 기업인들을 호통치는 식상한 장면이 연출되지 않는 국감, 근거있는 비판과 질책이 있는 국감을 왜 할 수 없는지 국민들은 화가 난다.

정치권에서는 연중 필요에 따라 하는 상시국감을 현행 국감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개악이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우선 현재와 같은 국감으로서는 연중 민간 기업인들이 국회에 불려다니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이 경우 이들이 경영활동에 몰두하기 어려울 것은 자명하고 그 피해는 기업의 성과 하락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도 자신이 책임질 가능성이 있는 기업 관련 사안에 대한 일처리를 미룰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미 만연한 ‘변양호 신드롬’이 1년 내내 나타날 것이고 이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의 접점에 있는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약 1년 전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과 예산처리지연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치권이 자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치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며 국민과 국가경제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사실은 우리 국정감사제도의 보완방향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조명현 < 고려대 경영학 교수, 객원논설위원 cho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