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재·신구 관록 대결…"우열보다 차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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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황금연못'서 주인공 노먼役 더블 캐스팅
감정 절제하며 편안한 연기 VS 섬세하고 진중한 내면 연기
'우리 시대 할아버지' 모습 담아 객석 공감·호응 불러 일으켜
감정 절제하며 편안한 연기 VS 섬세하고 진중한 내면 연기
'우리 시대 할아버지' 모습 담아 객석 공감·호응 불러 일으켜
“신구 선생과 제가 표현하는 노먼에는 차이가 당연히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수천수만 명의 햄릿이 무대에 섰지만 같은 햄릿은 없었잖아요. 역할이란 게 꼭 규정돼 있는 건 아니거든요.”(이순재)
“순재 형님과 똑같다면 굳이 출연할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생긴 것부터 다르잖아요. 형님은 형님대로 잘해낼 거라 생각하고, 저도 저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신구)
공연을 한 달여 앞둔 지난 8월 기자간담회에서 두 ‘국민 할배’가 들려준 얘기 그대로였다. 서울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황금연못’에서 이순재(79)와 신구(78)는 각자의 개성과 해석을 담아 서로 다른 ‘노먼 세이어 주니어’ 박사를 보여준다. 주인공 노먼 역에 ‘더블 캐스팅’돼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두 원로배우의 연기를 하루 간격으로 같은 좌석에서 지켜봤다.
‘황금연못’은 연극보다는 헨리 폰다와 캐서린 헵번이 주연한 동명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희곡을 쓴 어니스트 톰슨이 직접 각색해 영화화했다. 1982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폰다가 생애 첫 남우주연상을, 헵번은 네 번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노부부로 나온 두 배우의 명연이 두고두고 기억될 작품이다.
뉴잉글랜드 숲 속 ‘황금 연못’ 여름 별장이 배경이다. 곧 80세가 되는 노먼과 그의 아내 에셸은 여느 해처럼 여름을 보내기 위해 별장을 찾는다. 80세 생일에 노먼의 딸 첼시가 새 남자친구 빌과 그의 13세 아들 빌리와 함께 방문한다. 극은 인생의 황혼을 맞은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평생 반목하며 지낸 부녀가 화해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린다.
영화를 감명 깊게 봤다면 연극의 이야기 구성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괴팍하고 성마른 노인 노먼과 다소 비딱한 아이 빌리가 서로 마음을 여는 과정이 연극에선 생략됐다. 첼시가 노먼과 빌리의 단란한 모습에 질투를 느껴 감정을 폭발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부녀의 화해가 급작스런 느낌을 주는 이유다.
하지만 연극에는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있다. 살아있는 배우가 살아있는 관객에게 살아있는 연기를 펼치는 데서 오는 감동이다. 이 감동의 중심에는 이순재와 신구가 있다. 실제 나이와 비슷한 연배의 노먼을 사실감 있게 표현한다. 방식은 다르다. 이순재가 감정을 절제하며 자연스럽고 보다 편안한 노먼을 보여준다면, 신구는 배역에 깊이 파고들어 섬세하고 진중하게 내면을 드러낸다. 같은 대사라도 두 배우가 억양과 호흡으로 주는 강조점에 따라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의 순간이 달라졌다. 우열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하다. 노먼에 각자의 스타일대로 ‘우리 시대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아 객석의 공감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노먼의 아내를 번갈아 연기하는 나문희와 성병숙도 사뭇 다른 모습으로 두 배우와 멋진 호흡을 보여준다. 조연들도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자칫 ‘노인극’으로 흐를 수 있는 극의 균형을 잡아줬다. 우미화(첼시) 이주원(마틴) 이도엽(빌) 등 연기 잘하는 중견 연극배우들이 ‘어르신들’을 든든하게 보좌한다. 공연은 내달 23일까지, 4만~6만5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순재 형님과 똑같다면 굳이 출연할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생긴 것부터 다르잖아요. 형님은 형님대로 잘해낼 거라 생각하고, 저도 저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신구)
공연을 한 달여 앞둔 지난 8월 기자간담회에서 두 ‘국민 할배’가 들려준 얘기 그대로였다. 서울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황금연못’에서 이순재(79)와 신구(78)는 각자의 개성과 해석을 담아 서로 다른 ‘노먼 세이어 주니어’ 박사를 보여준다. 주인공 노먼 역에 ‘더블 캐스팅’돼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두 원로배우의 연기를 하루 간격으로 같은 좌석에서 지켜봤다.
‘황금연못’은 연극보다는 헨리 폰다와 캐서린 헵번이 주연한 동명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희곡을 쓴 어니스트 톰슨이 직접 각색해 영화화했다. 1982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폰다가 생애 첫 남우주연상을, 헵번은 네 번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노부부로 나온 두 배우의 명연이 두고두고 기억될 작품이다.
뉴잉글랜드 숲 속 ‘황금 연못’ 여름 별장이 배경이다. 곧 80세가 되는 노먼과 그의 아내 에셸은 여느 해처럼 여름을 보내기 위해 별장을 찾는다. 80세 생일에 노먼의 딸 첼시가 새 남자친구 빌과 그의 13세 아들 빌리와 함께 방문한다. 극은 인생의 황혼을 맞은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과 평생 반목하며 지낸 부녀가 화해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린다.
영화를 감명 깊게 봤다면 연극의 이야기 구성이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괴팍하고 성마른 노인 노먼과 다소 비딱한 아이 빌리가 서로 마음을 여는 과정이 연극에선 생략됐다. 첼시가 노먼과 빌리의 단란한 모습에 질투를 느껴 감정을 폭발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부녀의 화해가 급작스런 느낌을 주는 이유다.
하지만 연극에는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이 있다. 살아있는 배우가 살아있는 관객에게 살아있는 연기를 펼치는 데서 오는 감동이다. 이 감동의 중심에는 이순재와 신구가 있다. 실제 나이와 비슷한 연배의 노먼을 사실감 있게 표현한다. 방식은 다르다. 이순재가 감정을 절제하며 자연스럽고 보다 편안한 노먼을 보여준다면, 신구는 배역에 깊이 파고들어 섬세하고 진중하게 내면을 드러낸다. 같은 대사라도 두 배우가 억양과 호흡으로 주는 강조점에 따라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의 순간이 달라졌다. 우열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하다. 노먼에 각자의 스타일대로 ‘우리 시대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아 객석의 공감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노먼의 아내를 번갈아 연기하는 나문희와 성병숙도 사뭇 다른 모습으로 두 배우와 멋진 호흡을 보여준다. 조연들도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자칫 ‘노인극’으로 흐를 수 있는 극의 균형을 잡아줬다. 우미화(첼시) 이주원(마틴) 이도엽(빌) 등 연기 잘하는 중견 연극배우들이 ‘어르신들’을 든든하게 보좌한다. 공연은 내달 23일까지, 4만~6만5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