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이버대 제공
고려사이버대 제공
“아버지의 태권도복 왼쪽 가슴엔 항상 태극기가 있었어요. 우리 도장은 온두라스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리는 홍보관이었죠.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스페인어로 한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저를 보셨다면 ‘정말 자랑스럽다, 내 딸’이라고 말씀하셨을 거예요.”

서울 운니동에 있는 주한 온두라스대사관에서 8일 만난 송이벳 씨(36·사진)는 이국만리 온두라스에서 태권도 보급에 반평생을 바친 아버지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송씨는 미첼 이디아케스 바라닷 주한 온두라스 대사의 부인으로, 온두라스에서 태어나 2010년부터 남편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있다.

송씨의 아버지 고 송봉경 사범은 1976년 온두라스 정부 초청을 받아 온두라스 육군사관학교에서 태권도 교관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현지 경찰학교와 대통령 경호실 등에서 태권도와 호신술을 가르쳤고, 1981년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에 태권도장을 열었다.

송씨는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한국말로 태권도를 가르쳤고, 한국식 예절을 배우도록 했다”며 “체육관 벽에는 항상 한국을 알리는 화보를 붙여두고 한국 관련 홍보책자를 마련해 두셨다”고 회상했다. 송 사범의 제자 중엔 포르피리오 로보 전 대통령 등 유력 인사가 많다. 온두라스 정부는 송 사범의 공로를 기려 올해 처음으로 그의 기일(1월4일)을 법정기념일인 ‘태권도의 날’로 지정했다.

남편인 바라닷 대사 역시 아버지의 제자로 태권도 3단이다. 송씨는 4단이다. 부부는 요즘도 집 근처 태권도장을 다닌다.

모국을 알릴 수 있는 일을 찾던 송씨는 지난 9월부터 고려사이버대(총장 김중순)의 ‘바른 한국어’(korean.cuk.edu)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스페인어권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바른 한국어’는 세계인들에게 영어와 중국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로 한국어를 교육하는 프로그램. 홈페이지와 유튜브, 네이버TV케스트 등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면 누구나 쉽게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다.

그는 “남편 소개로 강의를 시작하게 됐다”며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외국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쉽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30분 강의 준비에 반나절이 걸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송씨가 ‘한국어 교사’로 나선 데는 부모의 영향이 컸다. 부모는 집안에서 한국어만 쓰도록 했고, 대학 2학년 때는 송씨를 한국에 보내 고려대 어학원에서 공부하게 했다. 어머니 강영신 씨는 1994년부터 20년간 온두라스 제2의 도시인 산페드로술라에서 한국학교 교장을 맡아 왔다. 한국 동포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주말마다 집에서 차로 왕복 9시간 거리인 학교를 오가고 있다. 2010년엔 주한 온두라스 대사에 내정됐다가 귀화인은 출신국가의 대사로 일할 수 없다는 온두라스 법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송씨도 아들 미첼(8)과 다니엘(4)에게 한국어를 꾸준히 가르치고 있다. 다니엘을 한국 어린이집에 보냈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더 주기 위해 국제학교 입학을 1년 늦추기도 했다. 송씨는 “존댓말을 쓰면서 연세가 많은 분들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하는 것이 한국어의 매력”이라며 “외교관인 남편이 다른 나라에 부임하게 되더라도 계속 한국어를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