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산업단지에 있는 대모엔지니어링 이원해 회장이 굴착기 부품인 절단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지혜 기자
시화산업단지에 있는 대모엔지니어링 이원해 회장이 굴착기 부품인 절단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지혜 기자
“1990년대에는 반월·시화공단을 한 바퀴 돌면 자동차 한 대가 나온다고 할 정도였어요.”

채병용 한국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장은 반월·시화산업단지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에는 2만여개의 부품이 들어가는데 반월·시화산업단지에 온갖 부품·소재 기업이 몰려 있어 구하지 못하는 부품이 없었다는 얘기다. 지금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부품소재 기업이 이곳에 몰려 있다.

하지만 상황은 다르다. 자동차 관련 부품업체들은 1990년대 말부터 공장이 있는 곳(울산과 해외)으로 상당수 이전했다. 이후 반월·시화공단은 특색 없는 공단으로 전락했다. 대불공단 하면 조선업을 떠올리는 것처럼 ‘간판 업종’이 없어진 탓이다.

산업단지공단 경기지역본부는 간척지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시화멀티테크노밸리(MTV) 입주를 계기로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강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소규모 클러스터를 만들고, 부품 기지의 장점을 살려 세계적인 부품 공급 기지로 리모델링하겠다는 전략이다.

◆노후화·영세화 문제점

반월·시화공단, 세계적 부품 공급기지 변신
그동안 공단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채 본부장은 “2000년대 중반 반월·시화공단을 인쇄회로기판(PCB)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대형 PCB 기업들을 유치했지만 연관 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PCB산업은 주도산업으로 인정받지 못해 제대로 된 정부 지원도 받지 못했다. 현재 PCB 업계는 중국 업체의 난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후 반월·시화단지는 방향을 잡지 못했다.

공단 관계자는 “자식 많은 집에 큰형이 출세하면 다른 자식들도 다 같이 뭔가 해볼 수 있지만 현재 반월·시화에는 큰형이 없는 형편”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반월·시화공단에는 300명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이 33곳밖에 없다. 1만4540개 기업은 50인 미만의 소기업이다. 게다가 이들 기업 대부분은 대기업 2, 3차 협력업체이거나 저부가가치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산단공은 “대부분 중소기업은 기술, 인력, 마케팅 능력이 부족해 혁신역량이 취약하다”고 보고 있다.

공단의 낙후한 시설도 문제다. 이곳에 입주해 있는 에이스기계 이철 사장은 “직원들이 데이트하려면 20분은 차를 몰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단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커피전문점 하나 제대로 찾기 어려울 정도다. 문화 복지시설은 말할 것도 없다. 1970년대 이후 서울에서 사양산업을 내려보내면서 제조에 집중하던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적 부품소재 단지로

산업용 유압 브레이커(포클레인 등 기계 앞부분에 부착해 콘크리트 등을 분쇄하는 장치)를 만드는 대모엔지니어링은 반월·시화공단의 미래를 보여주는 회사로 꼽힌다. 대모엔지니어링은 2002년 이곳에 들어온 이후 매출이 9배 가까이 성장했다. 이 회사는 MTV에 1만6000㎡(약 5000평)를 분양받아 내년 입주한다. 이원해 대모엔지니어링 회장은 “우리 회사 혼자 입주하는 게 아니라 협력업체 서너 곳과 함께 입주할 계획”이라며 “육아시설 연구시설 등도 함께 쓰고 교육도 같이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니 클러스터를 만드는 셈이다. 강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미니클러스터를 MTV에서 집중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또 다른 미래 방향은 기존 강점을 살려 글로벌 부품기지로 변신하는 것이다. 안산에 공장을 둔 이구산업 손장원 대표는 “안산의 가장 큰 장점은 기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빨리 필요한 부품을 조달해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국내 다른 공단으로 이전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공단은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 부품 소재 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원하는 부품은 반월·시화에 오면 모두 구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공단은 또 인재들이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안산에 호텔과 오피스텔을 건축 중이다. 주차장 문제 해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아울러 공단 내에 각종 편의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시화=김용준/민지혜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