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전셋 자금 지원에 쓰여야 할 국고보조금 수십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가짜 서류를 제출해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 수십억원을 대출받은 혐의(사기)로 김모씨(33)를 구속하고 공범과 명의제공자 2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발표했다.

이들은 지난 2011년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모두 207차례에 걸쳐 노숙자 명의로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 33억7000여만원, 제2금융권과 자동차할부금융사 대출 41억5000여만원 등 75억여원을 대출받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은 최근 1년간 부부합산 총소득이 50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에게 연 3.3%의 낮은 금리로 전세 보증금을 대출해주는 제도다.

김씨 등은 전세자금 대출에 필요한 서류 마련을 위해 허위로 근로사업장 18개를 설립, 노숙자 등을 근로자로 등록하고 4대 보험에 가입하도록 했다.명의를 빌려준 노숙자엔 한 명당 200만~1000만원을 지급했다. 금융기관의 대출심사에 대비해 노숙자들을 3~6개월 간 합숙 훈련시키기도 했다.

김씨 일당은 전국의 부동산중개업소를 돌며 전세보증금 채무를 양도받는 조건으로 2000만~3000만원만을 주고 주택을 사들인 뒤 가짜 명의를 이용해 전세계약을 맺었다. 금융기관은 이들이 제출한 전세계약서와 가짜 서류에 속아 전세자금을 대출해줬다.

근로자서민주택전세자금의 경우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이 입금되고, 계약이 만료되면 집주인이 대출금을 직접 상환토록 돼 있어 기존 세입자들은 김씨 일당의 수상한 행각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들은 또 전세자금을 가로채고 달아나기 전 사들인 주택을 담보로 제2금융권 등에서 추가로 대출금을 받아챙기기도 했다. 대출로 노숙자 등 명의제공자의 신용등급이 높아진 점을 이용해 자동차할부금융사에서 고급 승용차를 할부로 사들인 뒤 바로 팔아넘기는 등 이들의 사기행각은 그칠 줄을 몰랐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일당이 구입한 집에서 살고있던 세입자들은 집주인이 바뀐 줄만 알고 있다가 전세금을 날리게 됐다”며 “이같은 사기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국토부와 금융기관에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