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발전사(史) 자체가 도전의 역사였다. 말 그대로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반도체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세계적인 제조업이 모두 이렇게 탄생했다. 맨주먹으로 제철소와 조선소를 짓고, 정부까지 만류하던 반도체에 사활을 걸고 뛰었던 기업가정신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기업가는 죽었다. 심지어 ‘타살’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한국경제신문이 창간 50주년을 맞아 기획한 한국 500대 기업 현황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다. 2003년 이후 10년간 새로 500대 기업에 들어간 148곳 가운데 창업 20년 이하의 순수 민간 기업은 불과 14곳이다. 같은 기간 미국 50대 기업의 66%, 글로벌 500대 기업의 46%가 매출 순위에 큰 변화를 보인 것과 대조된다.

한국 특유의 도전정신과 역동성이 사라졌다.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GEDI)가 121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고작 33위였다는 것이 이런 실상을 보여준다. 물론 STX 웅진 팬택 등의 도전이 있었다. 그러나 무너지고 말았다.

[한경 특별사설] 도처에서 경제적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 과잉은 경제 시스템에 미증유의 충격을 주고 있다. 동반성장론에서부터 경제민주화까지 경제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정치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이미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다. ‘잃어버린 20년’의 일본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중이다. 성장률은 역대 정부를 거칠 때마다 평균 1%포인트 안팎씩 떨어졌다. 김영삼 정부 때만 해도 7.4%였지만 김대중 정부 5%, 노무현 정부 4.3%, 이명박 정부 2.9%로 계속 내리막이다. 덩달아 잠재성장률도 떨어졌다. 이제는 4%도 안 된다. 박근혜 정부 역시 3%를 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경제살리기에 올인을 선언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더 올라가지 못하면 추락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의식을 주목한다. 최경환 경제팀은 내년까지 ‘41조원+α’ 규모의 확대재정정책을 꺼내들었다. 올해 26조원으로 잡았던 재정 투입 규모를 31조원으로 늘리는 추가 부양책도 내놓았다. 그러나 재정정책은 경기 관리는 몰라도 경제를 살려내지는 못한다. 공기업 개혁, 규제 개혁, 사회 시스템 개혁을 통해 국정 운영의 틀을 확 바꿔야 한다.

사회·정치 의식의 심각한 좌편향적 선회가 사회발전을 억누르고 있다. 성장은 낡은 가치로 선언되고 분배와 복지가 최우선적 가치를 차지하고 말았다. 성장은 필요없다는 식의 극단적 양극화 의식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경제는 민주화의 대상이며 기업가는 착취자이고 정부가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는 오류가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한경과 전경련이 공동조사한 결과도 그런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업의 목적이 이윤창출이 아니라 사회공헌이라는 답변이 60%로 압도적이라는 것은 반(反)기업 정서가 왜 이다지도 만연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보통의 회사원들조차 기업을 땀흘려 일하는 곳이 아니라 복지기구처럼 생각한다는 개탄이 나올 정도다.

저질 민주주의가 시장경제의 창의성을 제도적 구조적으로 압도하는 이런 사회에서 더 이상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저성장은 악순환으로 분배와 복지에 대한 갈등을 증폭시키고 결국은 사회를 파괴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상적 궤도를 이탈해온 이런 낡은 이념을 깨뜨리지 않고는, 다시 말해 사이비 민주화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않고는 더는 라틴증후군 혹은 ‘남유럽적 게으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경제적 자유와 경제하려는 의지가 위협받고 있다. 굳이 낡은 어법을 빌린다면 도처에 반자유주의적 유령이 배회하고 있는 것이다.

한경의 지난 50년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궤를 같이해 왔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1964년 창간해 국민소득 2만6000달러의 오늘에까지 경제발전의 가장 강력한 동반자이기도 했다. 지금 한경은 다시 국민소득 5만달러를 제창하고 있다. 연평균 4%씩 성장한다 해도 18년이나 걸리는 험준한 노정이다. 5만달러에 걸맞은 행동과 정신의 양식(아비투스)이 필요하다. 길을 빗나간 대중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정위치시키고 온갖 종류의 가짜 주장을 대체하는 경제적 자유의 가치를 다시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 2만달러의 규제망을 끊어내고, 국회를 선진화하며, 기업들이 앞장서 뛸 수 있는 재도약의 체제를 갖춰야 한다. 한경은 이를 위해 또 다른 노정을 시작할 것이다. 한경 창간 50주년을 우리는 스스로 ‘자유에의 노정’이라고 이름 지어 부르고 있다. 앞으로의 50년 역시 자유에의 더욱 험난한 노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창간 50주년을 맞은 한경의 새로운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