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새벽엔 영어, 퇴근 후엔 일본어, 주말엔 중국어…외무고시 보듯 공부해도 실전에선 꽝…'외국어 울렁증' 藥 어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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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발음·완벽문법 그게 무슨 소용
환율전망·국제 정세 분석…임원회의 전문용어 앞에선 말문이 턱
직장인 외국어 스트레스
스마트폰 녹음기능 뒀다 뭐하나요!
일단 다 알아들은 듯 자신감 충만한 표정
영어회의 끝나면 '듣고 또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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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외국어 스트레스
스마트폰 녹음기능 뒀다 뭐하나요!
일단 다 알아들은 듯 자신감 충만한 표정
영어회의 끝나면 '듣고 또 듣고'
광고회사에 다니는 박 과장은 최근 사내에 영어 동아리를 만들었다. 타고 난 ‘말발’과 기획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영어로 일할 일만 생기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기 때문이다. 영문 기획서를 작성할 때마다, 외국인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마다 큰 벽을 느낀다. 혼자 공부하자니 갑갑하고,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영어 연수를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는 울며 겨자먹기로 뜻이 맞는 선후배를 모아 영어 공부에 나섰다. 그렇다. 영어의 압박은 대학 입시와 입사 시험이 끝이 아니다.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 직장에 들어왔지만 오늘도 김과장 이대리들은 외국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외국어 스트레스에 얽힌 직장인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외국어 공부엔 밤낮이 없다?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장 과장은 외국어 학원을 세 곳이나 다닌다. 아침 7시에는 영어학원에 가서 비즈니스 회화를 공부하고, 저녁에는 격일반으로 2시간짜리 일본어 회화 수업을 듣고 있다. 또 토요일마다 4시간짜리 중국어학원도 다니고 있다. 대학 시절 미국으로 1년간 해외연수도 다녀왔고, 일본어도 부전공으로 했기 때문에 주위에선 영어와 일본어를 상당히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해외 바이어들을 만날 때마다 식은땀을 흘린다. 장 과장은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영어를 무려 25년 넘게 공부했는데도 여전히 외국인 앞에서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기업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강 과장도 10년간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한 강 과장은 군대도 카투사로 다녀온 데다 평소 영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아 토익점수가 만점에 가까웠다. 입사 면접에서도 능숙하게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소화해 부서 배치 때부터 영어를 잘하는 사원으로 손꼽혔다. 그는 그룹장의 통역으로 프랑스 한 전자기업에서 온 고객들과의 미팅자리에 나갔다. 그러나 프랑스 고객들의 영어를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긴장이 극에 달해 통역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룹장은 미팅 후 강 과장에게 한마디 툭 던지듯이 말했다. “영어 공부 좀 더해야겠어.”
아들까지 ‘대리 출석’ 시키기도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에 다니는 서 부장은 연말 승진 인사 시즌을 앞두고 최근 저녁 일과가 바쁘다. 승진고과에 각종 업무 실적과 함께 공인 영어시험 성적이 포함돼 있어서다. 불규칙한 퇴근 때문에 개인 교습을 받기도 힘들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밤 11시에도 할 수 있는 인터넷 화상영어 수업이다.
그는 8월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출석일이 다섯 번에서 네 번, 네 번에서 세 번으로 자꾸 줄어들었다. 문제는 출석표다. 영어수업을 계속 받고 있다는 출석표를 내야 회사로부터 수강료 지원을 받는 데 계속 빠지게 되자 그는 아들을 ‘대타’로 내세웠다. 서 부장은 “영어점수도 시원찮은데 강의도 빠지면 성실성까지 의심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종합상사에 근무하는 박 대리는 사내에서 ‘영어의 달인’으로 통한다. 그러나 본인은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고 부인한다. “다만 노하우가 있을 뿐”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그가 후배 사원들에게 공개한 비결은 ‘자신감’이다. 그는 외국인과 만나면 인사를 유쾌하게 한 뒤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며 자신감있게 생각을 전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더듬거리는 영어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그다음 비장의 무기가 녹음기다. 우선 더듬더듬 영어로 설명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How do you think about that?)”라고 묻는다. 상대방이 대답을 하면 100% 못 알아들었더라도 일단 ‘OK’라고 답변한 뒤 미팅이 끝나면 녹음 파일을 반복해 들으면서 꼼꼼하게 확인한다고 한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김 대리는 최근 마케팅 담당 임원과 미팅 자리를 한 뒤 무릎을 쳤다. 통역으로 차출된 김 대리는 영어 실력이 부족한 임원을 보면서 ‘어떻게 저 자리에 올라왔지’라며 혀를 찼다. 그러나 거래업체 외국인과의 미팅이 시작되자 임원은 상대방을 감동시켰다. 환율을 포함한 세계 시장 전망은 물론 미국 정가 얘기까지 화제가 막힘이 없었다. 통역인 김 대리가 되레 진땀을 빼야 했다. 김 대리는 “유창한 영어보단 비즈니스 미팅에선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실력이 없으면 빌붙어라?
유통업체에 다니는 김 대리는 업무 특성상 해외 거래처에서 수시로 전화와 이메일이 온다. 이메일은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전화 통화나 방문 외국인 응대는 정말 능력 이상의 업무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상부상조. 김 대리 부서에는 해외 유학파 출신 선배가 있었다. 부서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데다 업무 능력도 별로 좋지 않아 챙겨주는 부서원이 별로 없었던 선배였다. 꼼꼼한 김 대리는 이것저것 선배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고, 단짝처럼 점심시간에도 자주 식사를 했다. 김 대리는 대신 이메일이나 외국인과의 전화 통화 등을 자연스럽게 선배에게 부탁했다. “능력이 안 되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잘 챙겨서 도움을 받는 것도 기술이죠.”
강현우/안정락/김은정/강경민/김대훈/추가영 기자 hkang@hankyung.com
외국어 공부엔 밤낮이 없다?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장 과장은 외국어 학원을 세 곳이나 다닌다. 아침 7시에는 영어학원에 가서 비즈니스 회화를 공부하고, 저녁에는 격일반으로 2시간짜리 일본어 회화 수업을 듣고 있다. 또 토요일마다 4시간짜리 중국어학원도 다니고 있다. 대학 시절 미국으로 1년간 해외연수도 다녀왔고, 일본어도 부전공으로 했기 때문에 주위에선 영어와 일본어를 상당히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해외 바이어들을 만날 때마다 식은땀을 흘린다. 장 과장은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영어를 무려 25년 넘게 공부했는데도 여전히 외국인 앞에서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기업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강 과장도 10년간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한 강 과장은 군대도 카투사로 다녀온 데다 평소 영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아 토익점수가 만점에 가까웠다. 입사 면접에서도 능숙하게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소화해 부서 배치 때부터 영어를 잘하는 사원으로 손꼽혔다. 그는 그룹장의 통역으로 프랑스 한 전자기업에서 온 고객들과의 미팅자리에 나갔다. 그러나 프랑스 고객들의 영어를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긴장이 극에 달해 통역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룹장은 미팅 후 강 과장에게 한마디 툭 던지듯이 말했다. “영어 공부 좀 더해야겠어.”
아들까지 ‘대리 출석’ 시키기도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에 다니는 서 부장은 연말 승진 인사 시즌을 앞두고 최근 저녁 일과가 바쁘다. 승진고과에 각종 업무 실적과 함께 공인 영어시험 성적이 포함돼 있어서다. 불규칙한 퇴근 때문에 개인 교습을 받기도 힘들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밤 11시에도 할 수 있는 인터넷 화상영어 수업이다.
그는 8월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출석일이 다섯 번에서 네 번, 네 번에서 세 번으로 자꾸 줄어들었다. 문제는 출석표다. 영어수업을 계속 받고 있다는 출석표를 내야 회사로부터 수강료 지원을 받는 데 계속 빠지게 되자 그는 아들을 ‘대타’로 내세웠다. 서 부장은 “영어점수도 시원찮은데 강의도 빠지면 성실성까지 의심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종합상사에 근무하는 박 대리는 사내에서 ‘영어의 달인’으로 통한다. 그러나 본인은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다”고 부인한다. “다만 노하우가 있을 뿐”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그가 후배 사원들에게 공개한 비결은 ‘자신감’이다. 그는 외국인과 만나면 인사를 유쾌하게 한 뒤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며 자신감있게 생각을 전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더듬거리는 영어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 그다음 비장의 무기가 녹음기다. 우선 더듬더듬 영어로 설명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How do you think about that?)”라고 묻는다. 상대방이 대답을 하면 100% 못 알아들었더라도 일단 ‘OK’라고 답변한 뒤 미팅이 끝나면 녹음 파일을 반복해 들으면서 꼼꼼하게 확인한다고 한다.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김 대리는 최근 마케팅 담당 임원과 미팅 자리를 한 뒤 무릎을 쳤다. 통역으로 차출된 김 대리는 영어 실력이 부족한 임원을 보면서 ‘어떻게 저 자리에 올라왔지’라며 혀를 찼다. 그러나 거래업체 외국인과의 미팅이 시작되자 임원은 상대방을 감동시켰다. 환율을 포함한 세계 시장 전망은 물론 미국 정가 얘기까지 화제가 막힘이 없었다. 통역인 김 대리가 되레 진땀을 빼야 했다. 김 대리는 “유창한 영어보단 비즈니스 미팅에선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실력이 없으면 빌붙어라?
유통업체에 다니는 김 대리는 업무 특성상 해외 거래처에서 수시로 전화와 이메일이 온다. 이메일은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전화 통화나 방문 외국인 응대는 정말 능력 이상의 업무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상부상조. 김 대리 부서에는 해외 유학파 출신 선배가 있었다. 부서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데다 업무 능력도 별로 좋지 않아 챙겨주는 부서원이 별로 없었던 선배였다. 꼼꼼한 김 대리는 이것저것 선배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고, 단짝처럼 점심시간에도 자주 식사를 했다. 김 대리는 대신 이메일이나 외국인과의 전화 통화 등을 자연스럽게 선배에게 부탁했다. “능력이 안 되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잘 챙겨서 도움을 받는 것도 기술이죠.”
강현우/안정락/김은정/강경민/김대훈/추가영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