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경제 대도약 - 5만달러 시대 열자] 남들이 하찮게 여기던 대부업서 기회 찾아…12년 만에 제도권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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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野性·승부 근성을 되살리자 (3) 익숙함 대신 이단의 길을 걷다
재일동포 3세로 한식당 '성공'
36세때 한국행…대부업 시작
연 순익 1000억 회사로 성장
'또 다른 도전' 중국 진출 나서
재일동포 3세로 한식당 '성공'
36세때 한국행…대부업 시작
연 순익 1000억 회사로 성장
'또 다른 도전' 중국 진출 나서
(3) 최윤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2014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에는 70여곳의 금융사가 포진해 있다. 악사(AXA), 알리안츠, BNP파리바 등 쟁쟁한 기업들이 정보기술(IT)·제조·화학·석유회사들과 어깨를 견준다. 그러나 500위 안에 한국 금융기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삼성생명(458위) 단 한 곳만이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 한국 제조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생존경쟁을 벌이며 성장하는 동안 금융기업들은 ‘성장’ 대신 ‘정체’, ‘퇴보’를 거듭한 결과다. 대형 시중은행들부터 해외시장에 진출하기보다 ‘익숙한’ 국내시장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자 장사’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 휴대폰 시장 판도를 바꾼 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이었다. 정체된 한국 금융시장을 뒤흔들 ‘이단아’들의 도전이 많을수록 국내 금융회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자극제가 된다. 1999년 36세의 재일동포가 혈혈단신으로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본에서 대형 한식당 체인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전도유망한 청년 실업가는 ‘조국을 위해 기업으로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행(行)을 결심했다. 주변에선 다들 만류했다. 부모님도 “평생 쓰고 남을 돈을 모았는데 굳이 낯선 땅에 가서 일을 벌일 필요가 있느냐”고 말렸다.
최윤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51)의 한국 금융시장 도전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대부업 자회사인 러시앤캐시로 더 잘 알려진 ‘비(非)주류 금융권’ 최대 기업. 사채업으로 통하던 대부업에서 시작해 올해 7월 예나래와 예주저축은행(현재 OK저축은행)을 인수해 ‘제도권’ 금융에 진입했다. 최 회장은 “내 좌우명은 ‘이단’에서 출발해 ‘정통’을 향하자는 것”이라며 “남들(기존 한국 금융회사들)이 보지 못한 분야에서 성공의 기회를 찾았다”고 말했다.
낯선 땅에 도전한 ‘이방인’
최 회장은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동포 3세다. 아직 우리말도 서툴다. 그는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가 인정받을 길은 전문직이나 운동선수, 연예인, 기업인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 직후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다. 1989년 나고야에 한식당 ‘신라관’을 세웠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일본 전역에 60개의 체인을 둘 정도였다. 성공을 거뒀지만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갔다. 그는 “한국 사람으로서 조국에 뭔가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애국의 방법은 ‘기업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1999년 무작정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첫 사업으로 벤처캐피털을 선택했다. 그러나 2년도 안돼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130억원의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최 회장은 “빈손으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며 “새 사업을 알아보던 중 한국에 서민금융을 담당할 대부업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엔 사채만 있었을 뿐 대부업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대부업이 공식화된 건 관련 법이 처음 국회를 통과한 2002년부터다. 최 회장은 원캐싱이란 대부업체를 만들었다. 2004년엔 일본 대부업체 A&O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키웠다. ‘러시앤캐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빅 히트를 쳤다.
이단? 남들이 보지 못한 걸 봤을 뿐
대부업으로 한국 시장에 안착했지만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그에 대한 루머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일본 야쿠자와의 연계설과 북한에 송금한다는 것. 이 때문에 검찰·국세청 조사까지 받았다.
개인적인 어려움과는 별개로 사업은 꾸준히 잘됐다. 업계에선 그를 ‘이단아’라고 평가했다. 대부업이 합법화된 뒤에도 여전히 ‘사채업’이란 인식이 강한 영역에서 두각을 보였기 때문이다. 성공비결은 업(業)의 이미지를 바꾼 데 있었다. 대부업도 부작용만 최소화하면 엄연한 금융업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최 회장은 “대부업은 은행에서 대출 거절을 당했지만 사채에 손을 벌릴 만큼 사정이 어렵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사정은 어렵지만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100명 중 20명가량의 고객을 선별하고 빨리 대출해준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러시앤캐시는 연 1000억원대 순이익을 거두는 회사로 성장했다.
금융도 충분히 수출할 수 있다
최 회장은 올해 저축은행으로 영역을 넓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축은행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그는 “기존 은행들은 고객이 언제든 부실채권자가 될 수 있다고 간주하는 데 비해 우리는 고객을 ‘가미사마’로 대했다”고 했다. 가미사마는 일본어로 신(神)을 의미한다. 철저한 서비스정신으로 금융업을 서비스업으로 바꿨다는 얘기다. 2007년 7500억원이던 총자산은 올해 3조원 가까이로 늘었다. 최 회장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중국 시장 공략이다. 중국 톈진, 선전, 충칭에 현지 법인을 세운 데 이어 베이징, 상하이 진출도 검토 중이다.
그가 생각하는 기업가 정신은 ‘이단’이다. 그는 “금융업에서도 남들이 보지 못한 곳에서 사업기회를 발견하고 과감히 도전하는 게 진정한 이단”이라고 강조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특별취재팀=이태명 팀장, 정인설(산업부) 전설리(IT과학부) 윤정현(증권부) 박신영(금융부) 전예진(정치부) 김주완(경제부) 임현우(생활경제부) 조미현(중소기업부) 양병훈(지식사회부) 기자
미국 경제주간지 포천이 선정한 ‘2014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에는 70여곳의 금융사가 포진해 있다. 악사(AXA), 알리안츠, BNP파리바 등 쟁쟁한 기업들이 정보기술(IT)·제조·화학·석유회사들과 어깨를 견준다. 그러나 500위 안에 한국 금융기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삼성생명(458위) 단 한 곳만이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포스코 등 한국 제조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생존경쟁을 벌이며 성장하는 동안 금융기업들은 ‘성장’ 대신 ‘정체’, ‘퇴보’를 거듭한 결과다. 대형 시중은행들부터 해외시장에 진출하기보다 ‘익숙한’ 국내시장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자 장사’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 휴대폰 시장 판도를 바꾼 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이었다. 정체된 한국 금융시장을 뒤흔들 ‘이단아’들의 도전이 많을수록 국내 금융회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자극제가 된다. 1999년 36세의 재일동포가 혈혈단신으로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본에서 대형 한식당 체인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전도유망한 청년 실업가는 ‘조국을 위해 기업으로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행(行)을 결심했다. 주변에선 다들 만류했다. 부모님도 “평생 쓰고 남을 돈을 모았는데 굳이 낯선 땅에 가서 일을 벌일 필요가 있느냐”고 말렸다.
최윤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51)의 한국 금융시장 도전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대부업 자회사인 러시앤캐시로 더 잘 알려진 ‘비(非)주류 금융권’ 최대 기업. 사채업으로 통하던 대부업에서 시작해 올해 7월 예나래와 예주저축은행(현재 OK저축은행)을 인수해 ‘제도권’ 금융에 진입했다. 최 회장은 “내 좌우명은 ‘이단’에서 출발해 ‘정통’을 향하자는 것”이라며 “남들(기존 한국 금융회사들)이 보지 못한 분야에서 성공의 기회를 찾았다”고 말했다.
낯선 땅에 도전한 ‘이방인’
최 회장은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동포 3세다. 아직 우리말도 서툴다. 그는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가 인정받을 길은 전문직이나 운동선수, 연예인, 기업인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 직후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다. 1989년 나고야에 한식당 ‘신라관’을 세웠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일본 전역에 60개의 체인을 둘 정도였다. 성공을 거뒀지만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깊어갔다. 그는 “한국 사람으로서 조국에 뭔가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애국의 방법은 ‘기업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1999년 무작정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첫 사업으로 벤처캐피털을 선택했다. 그러나 2년도 안돼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130억원의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최 회장은 “빈손으로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며 “새 사업을 알아보던 중 한국에 서민금융을 담당할 대부업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엔 사채만 있었을 뿐 대부업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대부업이 공식화된 건 관련 법이 처음 국회를 통과한 2002년부터다. 최 회장은 원캐싱이란 대부업체를 만들었다. 2004년엔 일본 대부업체 A&O인터내셔널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키웠다. ‘러시앤캐시’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빅 히트를 쳤다.
이단? 남들이 보지 못한 걸 봤을 뿐
대부업으로 한국 시장에 안착했지만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그에 대한 루머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일본 야쿠자와의 연계설과 북한에 송금한다는 것. 이 때문에 검찰·국세청 조사까지 받았다.
개인적인 어려움과는 별개로 사업은 꾸준히 잘됐다. 업계에선 그를 ‘이단아’라고 평가했다. 대부업이 합법화된 뒤에도 여전히 ‘사채업’이란 인식이 강한 영역에서 두각을 보였기 때문이다. 성공비결은 업(業)의 이미지를 바꾼 데 있었다. 대부업도 부작용만 최소화하면 엄연한 금융업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최 회장은 “대부업은 은행에서 대출 거절을 당했지만 사채에 손을 벌릴 만큼 사정이 어렵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사정은 어렵지만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100명 중 20명가량의 고객을 선별하고 빨리 대출해준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러시앤캐시는 연 1000억원대 순이익을 거두는 회사로 성장했다.
금융도 충분히 수출할 수 있다
최 회장은 올해 저축은행으로 영역을 넓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저축은행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그는 “기존 은행들은 고객이 언제든 부실채권자가 될 수 있다고 간주하는 데 비해 우리는 고객을 ‘가미사마’로 대했다”고 했다. 가미사마는 일본어로 신(神)을 의미한다. 철저한 서비스정신으로 금융업을 서비스업으로 바꿨다는 얘기다. 2007년 7500억원이던 총자산은 올해 3조원 가까이로 늘었다. 최 회장은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중국 시장 공략이다. 중국 톈진, 선전, 충칭에 현지 법인을 세운 데 이어 베이징, 상하이 진출도 검토 중이다.
그가 생각하는 기업가 정신은 ‘이단’이다. 그는 “금융업에서도 남들이 보지 못한 곳에서 사업기회를 발견하고 과감히 도전하는 게 진정한 이단”이라고 강조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특별취재팀=이태명 팀장, 정인설(산업부) 전설리(IT과학부) 윤정현(증권부) 박신영(금융부) 전예진(정치부) 김주완(경제부) 임현우(생활경제부) 조미현(중소기업부) 양병훈(지식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