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원회의 대기업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규제 이후 외국계 대형 MRO들이 그 자리를 속속 꿰차고 있다고 한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만 12조원인 독일 최대 MRO 업체 뷔르트가 올 상반기 국내에 진출했다. 일본 미스미그룹 역시 올초 국내에 상륙했고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MRO 기업인 미국 그레인저의 일본 자회사 모노타로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모노타로는 1년 반여 만에 3만여 국내 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다고 한다.

중기 보호 취지로 도입된 MRO 규제가 결과적으로 해외 대기업에 안방을 내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3년 전 동반위는 대기업 MRO의 내부거래 비중에 따라 신규사업 참여범위를 제한, 사실상 대기업이 MRO에서 손을 떼도록 했다. 일감몰아주기로 편법적 부의 승계수단이 되고 원가를 후려쳐 중소기업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삼성이 MRO 아이마켓코리아(IMK)를 매각하는 등 상당수 대기업이 MRO에서 손을 떼거나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하지만 일감몰아주기와 MRO는 아무런 직접적 관계가 없다. 대기업 MRO가 계열사로부터 과대 물량을 주문받거나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납품했다는 근거도 없다. 오히려 혈연 지연 학연 등을 배제한 투명한 선진 구매기법과 공정한 경쟁을 통해 원가혁신을 이뤄왔다. 삼성IMK의 경우 계열사 외에 국내외 기업은 물론 조달청까지도 고객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원가 후려치기만 해도 그렇다. 경영의 본질은 원가절감이다. 마른 수건이라도 쥐어짜는 노력 없이 어떻게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겠는가. 현명한 주부라면 콩나물 가격 하나도 깎는 법이다. 그런데도 MRO 원가 관리에 철퇴를 내렸다. 무지에 기반한 폭력적 규제였다. 그 결과 MRO를 이용하던 중소 제조업체 상당수는 구매 단가 상승으로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중기적합업종과 급식시장에 이어 중소기업 보호를 내건 규제가 또다시 외국기업 좋은 일만 시킨 사례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