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전문직 자격증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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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좋은 시절 다 갔다!” 수습기자 때 선배들로부터 자주 듣던 말이다. 갓 들어온 후배기자들도 똑같은 얘기를 듣는다. 예전엔 낭만이 있었는데 각박한 경쟁만 남았다는 푸념과 함께. 사실 어느 직종에서나 “아! 옛날이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더 많은 소득은 언제나 더 센 업무 강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師, 士)’자 붙은 전문직은 어떨까. 고소득이고 정년도 없지 않은가. 의사 사위 보려면 열쇠 3개(아파트, 자가용, 병원)가 필요한 적도 있었다. 최근 국세청 통계는 상반된 두 장면을 보여준다. 전문직 평균 소득이 수억원대라는가 하면, 전문직 10%는 월 200만원도 못 번다고 한다. 전문직의 양극화일까, 소득탈루일까.
통계는 비키니와 같아 정작 중요한 건 안 보여준다지만, ‘전문직 자격증=장밋빛 인생’이란 등식은 깨지고 있다. 신랑감 선호도 조사에서 10년 전 2위였던 의사가 지난해 5위, 3위였던 회계사·변리사·세무사는 6위로 떨어진 게 우연이 아니다. 개인회생 쫓아다니는 변호사, 종일 환자가 와줘야 간신히 버틴다는 개업의가 수두룩하다.
변호사·의사 등 곳곳서 비명
전문직 위기는 수급에 기인한다. 수요는 굼벵이인데 전문직 공급은 뜀박질이다. 매년 변호사 2000명, 회계사 1000명 등이 쏟아진다. 변호사는 2만명을 넘었고, 회계사도 1만7000명에 이른다. 그럴수록 기대소득과 현실소득의 괴리는 갈수록 커져만 간다.
로비력 센 전문직 단체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국회에는 전문직 선발인원을 줄이자는 입법안이 여러 건 올라가 있다. 그런 법안의 진짜 임자가 누군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한변협 등 법조계에선 ‘좋은 시절’ 다 망친 로스쿨 폐지와 사시 존치를 외치는 소리가 드높다. 전직 대법관이 로스쿨 교수로 가면서 “로스쿨은 파탄날 제도”라고 맹비난했을 정도다.
영역 확장과 ‘나와바리’ 다툼도 치열해지고 있다. 공인회계사회는 수수료가 높은 지정감사 확대와 10년째 시간당 8만원 안팎인 선에서 요지부동인 외부감사 수수료 인상이 숙원이다. 모든 상장사와 금융회사의 외부감사를 금융당국이 강제 지정하자는 외감법 개정안까지 국회에 올라가 있다. 변리사협회는 대형 로펌 대표 등 변리사 겸업 변호사들이 의무연수를 기피한 것을 문제삼고 나서, 최근 특허청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기대소득 낮추면 길은 무궁무진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좋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저성장의 짙은 그림자가 전문직 위기를 재촉할 것이다. 혹자는 ‘가난한 전문직’이 늘면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고 주장한다. 비리를 저지르면 운전면허 취소하듯 자격을 박탈하면 그만이지, 시계를 되돌릴 이유는 못된다. 유감스럽게도 전문직 비명소리가 커질수록, 소비자(국민)는 이득이라고 여기게 된다.
자격증 획득은 스펙의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평생 밥벌이 보증수표였던 전문직 자격증이 이젠 어학능력과 별반 다르지 않게 돼 가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기대소득을 낮추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 반드시 펌(firm)에 들어가거나 개업만 길이 아니다.
전문직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해 전반적인 수준을 높이는 ‘하방(下放)’은 어떨까. 먼저 기업에 들어가 산업과 실무를 익힌 ‘실학파’라면 훨씬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변호사 출신 중소기업 직원, 의사 출신 PD, 회계사 출신 직업군인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왜 레드오션에서 피 터지게 싸우며 한숨만 쉬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그렇다면 ‘사(師, 士)’자 붙은 전문직은 어떨까. 고소득이고 정년도 없지 않은가. 의사 사위 보려면 열쇠 3개(아파트, 자가용, 병원)가 필요한 적도 있었다. 최근 국세청 통계는 상반된 두 장면을 보여준다. 전문직 평균 소득이 수억원대라는가 하면, 전문직 10%는 월 200만원도 못 번다고 한다. 전문직의 양극화일까, 소득탈루일까.
통계는 비키니와 같아 정작 중요한 건 안 보여준다지만, ‘전문직 자격증=장밋빛 인생’이란 등식은 깨지고 있다. 신랑감 선호도 조사에서 10년 전 2위였던 의사가 지난해 5위, 3위였던 회계사·변리사·세무사는 6위로 떨어진 게 우연이 아니다. 개인회생 쫓아다니는 변호사, 종일 환자가 와줘야 간신히 버틴다는 개업의가 수두룩하다.
변호사·의사 등 곳곳서 비명
전문직 위기는 수급에 기인한다. 수요는 굼벵이인데 전문직 공급은 뜀박질이다. 매년 변호사 2000명, 회계사 1000명 등이 쏟아진다. 변호사는 2만명을 넘었고, 회계사도 1만7000명에 이른다. 그럴수록 기대소득과 현실소득의 괴리는 갈수록 커져만 간다.
로비력 센 전문직 단체들이 가만 있을 리 없다. 국회에는 전문직 선발인원을 줄이자는 입법안이 여러 건 올라가 있다. 그런 법안의 진짜 임자가 누군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한변협 등 법조계에선 ‘좋은 시절’ 다 망친 로스쿨 폐지와 사시 존치를 외치는 소리가 드높다. 전직 대법관이 로스쿨 교수로 가면서 “로스쿨은 파탄날 제도”라고 맹비난했을 정도다.
영역 확장과 ‘나와바리’ 다툼도 치열해지고 있다. 공인회계사회는 수수료가 높은 지정감사 확대와 10년째 시간당 8만원 안팎인 선에서 요지부동인 외부감사 수수료 인상이 숙원이다. 모든 상장사와 금융회사의 외부감사를 금융당국이 강제 지정하자는 외감법 개정안까지 국회에 올라가 있다. 변리사협회는 대형 로펌 대표 등 변리사 겸업 변호사들이 의무연수를 기피한 것을 문제삼고 나서, 최근 특허청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기대소득 낮추면 길은 무궁무진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좋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저성장의 짙은 그림자가 전문직 위기를 재촉할 것이다. 혹자는 ‘가난한 전문직’이 늘면 유혹에 쉽게 흔들린다고 주장한다. 비리를 저지르면 운전면허 취소하듯 자격을 박탈하면 그만이지, 시계를 되돌릴 이유는 못된다. 유감스럽게도 전문직 비명소리가 커질수록, 소비자(국민)는 이득이라고 여기게 된다.
자격증 획득은 스펙의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평생 밥벌이 보증수표였던 전문직 자격증이 이젠 어학능력과 별반 다르지 않게 돼 가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기대소득을 낮추면 길은 얼마든지 있다. 반드시 펌(firm)에 들어가거나 개업만 길이 아니다.
전문직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해 전반적인 수준을 높이는 ‘하방(下放)’은 어떨까. 먼저 기업에 들어가 산업과 실무를 익힌 ‘실학파’라면 훨씬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변호사 출신 중소기업 직원, 의사 출신 PD, 회계사 출신 직업군인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왜 레드오션에서 피 터지게 싸우며 한숨만 쉬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