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추억의 영화
영화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이런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최고의 영화는 무엇이었나요’ 그럴 때면 대답이 망설여진다. 반면 최고의 문학 작품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일찌감치 떠오른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다. 인간의 숭엄함과 비굴함, 사랑과 욕망 등 삶의 넓은 스펙트럼이 여과 없이 빼곡하다. 이 책을 읽을 때면 어쩌면 톨스토이는 이렇게 남의 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지 감탄하게 된다.

다시 최고의 영화로 돌아오자면, 어쩐지 이 질문은 기억의 단추를 건드린다. 최고의 영화보다 오히려 뇌리에 처음 새겨진 영화는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바뀌곤 한다. 영화적 체험으로서 첫 번째라면 단연 ‘아마데우스’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오페라 무대, 귓전을 맴도는 심포니 선율은 영화관을 나선 후로도 한동안 신경을 자극했다. ‘마지막 황제’도 기억에 남는다. 어린 내게 이 영화는 부끄러움과 아이러니, 욕망과 외로움이 뒤섞인 기이한 세계였다. 마침내 그 누구도 아닌 평범한 남자가 돼 푸이가 스크린에서 사라질 때, 그건 마치 해가 서서히 저무는 10월의 가을날 혼자 툇마루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런 기분과 닮아 있었다.

사실 이런 추억의 영화들은 다시 볼 때 조금 낯이 뜨거워진다. 기억은 여기저기 왜곡돼 있기 일쑤고, 그럴듯했던 감상도 돌아보니 유치한 나르시시즘으로 넘쳐난다. 훌륭한 작품들이긴 하지만 금기된 영화를 훔쳐보던 청소년기의 정서를 재현해 주지는 못한다. 추억의 영화는 그때, 그 공간에서 본 ‘그’ 영화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든 추억의 영화가 있다. 추억의 영화에는 삶의 서사가 있다. 영화를 함께 본 사람, 영화관 특유의 냄새, 관람일의 날씨가 혼합돼 추억의 영화라는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다시는 결코 되돌이킬 수도, 재현할 수도 없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과거의 어떤 시기는 영화와 함께 서사로 복구되기도 한다.

적어도 어린 시절, 영화는 일상의 연속이 아니라 일탈의 영역이었으니까. 예매도 직접 해야만 했다. 길게 줄을 서서 영화 표를 샀던 그 시절, 주변 식당과 포장마차, 거리 자체가 영화관의 아우라를 만들어줬다. 그렇게 영화는 특별한 외출이었다. 방식이야 다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 추억의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추억도 추억이지만 추억의 영화는 참 힘이 세다.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