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지갑 없는 세상
올해 세계 금융권의 최대 화두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시장을 주도했던 미국 이베이의 페이팔과 중국 알리바바의 알리페이를 비롯해 최근에는 애플과 삼성까지 시장 확대를 선언하면서 전 세계에 ‘IT와 금융의 컬래버레이션’ 바람이 일고 있다.

은행의 비대면채널 이용률이 90%에 달하면서 이런 현상은 이미 예견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 창구를 방문해 예금에 가입하고 대출을 신청하는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다. 우리은행에서는 인터넷 상품을 통해 예금과 대출을 신청할 수 있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상담이 필요한 펀드 가입에 관해서도 인터넷 화상상담 서비스를 통해 상담부터 가입까지 가능하다. 이뿐 아니라 스마트뱅킹을 통한 신용, 전세대출 신청을 할 수 있으며 내년 초에는 담보대출까지 되도록 준비하고 있다. 상담을 위해 은행을 방문하고 다시 서류를 준비해서 다시 방문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방증이다.

앞으로 은행은 이런 변화에 두려워하거나 기존 영업방식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겸허히 수용하고 변화를 예측하면서 앞서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호주의 ‘벤딩고 애들레이드뱅크’는 삼성의 갤럭시 기어를 이용한 결제서비스를 출시해 앱을 통해 결제할 수 있게 했다. 뉴질랜드 ‘웨스팩’은 ‘구글 글라스’의 음성인식 앱을 통해 결제가 이뤄지는 서비스를 내놓는가 하면, 호주 헤리티지은행은 ‘파워슈트’라는 정장 소매에 붙은 결제용 칩을 통해 결제가 이뤄지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전 세계 모바일 결제액이 245조원가량 되고 2017년에는 이보다 3배 이상 성장한 약 750조원이 된다고 하니 글로벌 뱅크들이 지독하리만큼 관심을 가질 만할 것이다.

한국에도 시중은행의 ‘뱅크월렛’ 서비스(모바일 소액 송금 및 결제)가 곧 개시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시장에 비해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기존 은행의 고유영역이던 송금과 결제서비스를 이젠 스마트폰의 메신저 기능을 이용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바일 메신저 가입자가 3700만명가량 된다고 하니 웬만한 대형은행 고객 수보다 많은 것이다.

이젠 우리나라 은행들도 고유영역을 보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보다는 새로운 블루오션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사고를 바꾸고 새로운 시각으로 금융환경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은 시대의 변화속도만큼이나 발전하는 금융서비스에 목마르다.

이순우 < 우리금융지주 회장 wooriceo@woorif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