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병과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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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천자칼럼] 이병과 일병](https://img.hankyung.com/photo/201410/AA.9183728.1.jpg)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듯 식민시대의 흔적도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도 병영문화는 군국주의 일본식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은 폭력적 병영문화의 극단적인 사례였다. 일본제국의 군대문화가 미군의 제도와 결합했다는 분석도 있다. 초창기에는 일본군 경험자들이 많았다. 억압적 병영문화가 일본식이라면 계급과 편제, 작전은 대개 미국식이다. 훈련소에서 맨 처음 배우는 제식훈련부터 미군을 그대로 본떴다.
이병, 일병 하는 계급도 미군의 체제 그대로다. 미군의 갓 입대자가 private(이병), 다음 계급이 private first class(PFC·일병)다. 우리도 이병이 졸병이고, 일병이 더 상급이다. 많은 이들이 일병이 이병보다 더 높은 이런 명칭에 여전히 낯설어한다. ‘사적인’ ‘개인 소유의’라는 뜻인 private이 제일 졸병, 이병이 된 유래가 흥미롭다. 처음 군에 입대한 개개인이 군과 복무계약을 하면서 ‘민간계약서(private contract)’에 서명한 것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국 군댓말로 치면 ‘사제(私製)물이 아직 덜 빠져서…’쯤 되는 기간병들의 놀림이 느껴진다. 일정 기간이 지나 민간 냄새가 가시고 군인 비슷하게 자세가 갖춰지면 일병으로 진급한다.
1954년 정착된 이병-일병-상병-병장의 사병 계급체계를 바꾸는 방안을 놓고 시끌벅적하다. 일병-상병-병장의 3단계로 하되 병장은 분대장에게만 부여한다는 게 육군의 방안이다. 예전에는 ‘고참졸병’ 문화가 어땠을까. 조선시대 예비군격인 속오군의 군적지 기록에 의하면 17세기 중반 충청도 지방의 최연소 예비병력은 10살짜리 말먹이 꼬마였다. 최고령으로는 69세의 취사병(火兵) 이름이 남아 있다. 1년에 두 번 동원됐다는 이런 부대의 지휘는 어땠을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사병들의 상하 관계는 오직 하나, 하루라도 먼저 입대했느냐에만 달린 것이 우리 군대다. 누구에게나 한치 착오없는 평등한 기준이지만, 부조리한 이 잣대를 어떡하나. 낡은 병영문화를 개선해보려는 군의 노력이 눈물겹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