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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킹크랩 사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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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천자칼럼] 킹크랩 사재기
    탈레스는 인간에게 가장 유익하고 필요한 학문이 철학이라고 말해왔다.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철학이 유익하다면 당신이 부자인 것을 보여달라고 했다. 부자가 아니라면 탈레스가 현명하지 않다는 증거로 생각한 것이다. 이 소문을 들은 탈레스는 겨울철 달과 별의 움직임을 관찰한 다음 이듬해 올리브 농사가 풍작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곧바로 시중의 올리브 짜는 기계를 가동할 수 있는 권리를 모두 사들였다. 탈레스가 예측한 대로 다음 여름에 올리브 농사가 풍작이 됐지만 올리브 짜는 기계가 있을 리 만무했다. 탈레스는 기계를 비싼 가격에 빌려줘 큰 부자가 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리퍼블릭’에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철학자들은 원한다면 언제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영국인 앤서니 워드는 20년간 아프리카에서 코코아 농사를 직접 짓고 거래를 해왔던 무역업자였다. 철학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코코아 농사에 필요한 기후가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워드는 1998년 헤지펀드 아르마자로를 설립했다. 2010년 7월 무려 24만t의 코코아를 여러 경로를 통해 구입했다. 세계 생산량의 7%였다. 그해 여름 코코아 가격은 35년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워드가 거래차익으로 남긴 금액은 수억달러에 달했다.

    탈레스와 앤서니 워드가 손댄 사재기 품목은 농산물이었다. 유통구조가 복잡하면 사재기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재난이나 위급 상황 때에도 사재기 열풍은 항상 번진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이 전국의 갓끈이나 제수용품으로 재미를 봤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들어 재미있는 현상은 백열전구 사재기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모든 유럽 국가들이 2009년부터 백열전구 생산을 중단하려 하자 갑자기 사재기 열풍이 불었다. 미국에서도 2011년 백열전구 판매 중단에 따른 사재기가 휩쓸었다.

    킹크랩 가격이 대폭락했다는 소식이다. 서울 대형 슈퍼마트에서는 기존 가격의 절반에 킹크랩을 내놓고 있다. 올해 알래스카 등지에서 킹크랩이 많이 잡힌 것도 한 원인이지만 강원도 동해항 쪽 수입업자 한 명이 무려 200t을 사들였다가 재고가 늘어 창고에서 죽어나가자 거의 원가 수준으로 물량을 처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수입업자가 물량을 푸니까 다른 수입업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물량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가격에 거품이 끼어있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여하튼 봉이 김선달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탈레스처럼 철학을 하든지 아니면 워드처럼 하나의 업종에 정통해야 하나보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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