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베일리 브루킹스연구소 산업정책연구실장은 지난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높은 생산성은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마틴 베일리 브루킹스연구소 산업정책연구실장은 지난 1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높은 생산성은 치열한 경쟁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경쟁 없이는 혁신이 불가능하고, 생산성 향상도 어렵습니다.” 미국 경제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 후반 빌 클린턴 행정부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마틴 베일리 브루킹스연구소 산업정책연구실장(65)은 지난 13일 한국경제신문과 한 창간 50주년 특별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도 생산성 둔화에 직면해 있지만 여전히 혁신과 생산성에서 세계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업 간 치열한 경쟁의 결과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계 각국이 생산성 둔화와 저성장 위험에 직면해 있다”며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많고, 경쟁구도가 느슨한 나라일수록 생산성이 낮아진다”고 지적했다. 베일리 실장은 “미국 경제를 이끄는 리더십은 제조업이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산업에서 나온다”며 “한국도 서비스산업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미국 내에서 경제 황금기였던 빌 클린턴 행정부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1990년대 후반 미국 경제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투자와 혁신, 그리고 노동력 증가 등이 결합해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끌었습니다. 정치 분열도 지금보다 덜해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도 높았죠. 중국 유럽 등 글로벌 경제도 호황이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지금과는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미국 경제가 1990년대 후반처럼 완전고용과 균형재정을 달성하는 시기가 다시 올 것으로 봅니까.

“글쎄요. 그때는 기업 투자, 주택 투자, 소비 확대 3박자가 완벽히 갖춰졌습니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할 것 없이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 모두 고용이 늘어났고 임금도 고르게 올랐습니다. 그 결과 소비가 팽창해 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도 혁신과 투자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때만큼 강도가 크지 않습니다. ”

▷전 세계적으로 생산성 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노동생산성이 둔화되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1980~1990년대 컴퓨터 보급처럼 경제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생산성을 개선시킬 정도의 기술혁신과 발전이 미약하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창간 50주년] "한국, 低성장 탈피하려면 싱가포르처럼 서비스업 키워야"
▷그래도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맥킨지컨설팅과 함께 국가별 생산성 차이를 연구한 적이 있는데, 생산성이 낮은 나라는 주요 산업 분야에서 ‘베스트 프랙티스(모범경영 사례)’가 없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부 규제와 간섭, 그로 인한 경쟁 부재로 인해 베스트 프랙티스가 형성되지 않았던 거죠. 경쟁이 치열하면 혁신을 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나라입니다. 모든 대기업이 들어와 싸우고 있죠. 이런 게 미국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여주는 원천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세계 경제 전망을 하향 조정했습니다.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중국의 성장 둔화와 주요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난달 분리독립 투표를 한 스코틀랜드와 같은 사례가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런던 파리 로마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경기 재침체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로존의 경제가 차별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유로존은 경기 부양이 필요한 시기에 세금 인상과 대규모 긴축을 단행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유로화 도입 자체가 실수였습니다. 유로화 출범 이후 2007년까지 경제가 잘 굴러갔지만 금융위기 발생 후 단일통화 체제로 잘 뭉쳐지지 않았다는 게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 등 상당수 국가가 단일통화 체제에 적합한 구조개혁을 하지 못해 문제를 일으켰고, 급기야는 독일 경제까지 약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재정 확대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대공황에서 배운 교훈은 금리가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면 통화정책으로는 경기를 부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미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양적 완화에 나섰던 것이죠. 하지만 경기침체일 때는 금리를 아무리 낮추고 돈을 풀더라도 소비 확대로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수요를 진작시키는 케인스식 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나라가 과도한 재정적자에 직면해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질 때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10조달러를 웃돌았습니다. 8년간 두 배 이상 늘어난 막대한 규모였죠. 당시 재정적자를 감수한 경기 부양책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재정 확대를 밀어붙였고, 그것이 미 경제를 지탱시켰습니다. 재정확대 기조를 계속 유지해야 했는데 정치권(공화당)의 반대로 예산 축소로 돌아서고 말았죠.”

▷오바마 대통령은 인프라 투자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 인프라의 질과 생산성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총수요를 진작해 성장을 회복시키기 위해 정부가 인프라를 개선하는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합니다. 일종의 ‘제2 뉴딜정책’이 필요합니다. 재정적자 축소 노력도 해야 하지만 경제 성장을 회복시키는 게 우선입니다.”

▷경제가 본격 성장하려면 기업 투자가 살아나야 하지 않나요.

“재정 확대가 경제 성장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민간 수요를 촉진시키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투자에 나서려면 민간의 수요가 일어나야 합니다. 교량이나 항만 건설과 같은 인프라 투자는 산업연관 효과가 크고 고용 창출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최근 일본 정부가 재정 확대를 통해 인프라·건설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봅니다.”

▷미국 대기업들은 수조달러의 현금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한국 대기업들도 투자가 위축돼 있습니다.

“기업 투자와 경제 성장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말에 곧잘 비유됩니다. 즉 경제가 좋아져야 투자가 늘어나는지, 아니면 투자가 늘어야 경제가 좋아지는지에 관한 논쟁이지요. 경제이론으로 보면 전자가 맞습니다. 경제가 성장해야 투자와 소비가 늘고 경제가 지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투자 위축은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장기간 저성장 국면에 빠져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는 것은 적절한 처방입니다.”

▷경제가 살아나면 기업 투자도 덩달아 늘어난다는 뜻인가요.

“기업 투자가 과거보다 위축된 것은 경제구조의 변화가 또 다른 원인입니다. 지금 미국은 서비스 경제입니다. 30~50년 전 중후장대 제조업 경제 시대에는 중화학 공업에 대규모 시설 투자가 이뤄졌고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성장동력은 이미 오래전에 정보기술(IT)과 금융 등 서비스산업으로 이동했습니다.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의 리더십은 제너럴모터스(GM) 제너럴일렉트릭(GE) US스틸이 아니라 구글 애플 페이스북에서 나옵니다. 다만 이런 기업들은 과거처럼 대규모 시설 투자와 고용 창출을 하진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많습니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 주도 성장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경제는 진화하는 동물과도 같아서 한국도 옛날 전략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금융 의료 관광 등 서비스 경제를 키우고, 경쟁을 유도해 혁신과 투자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싱가포르가 그와 같은 변신에 성공해 국민소득을 한 단계 상승시켰습니다.”

■ 베일리 실장은

클린턴 경제 교사 역할…맥킨지 한국보고서 주도

마틴 베일리 브루킹스연구소 산업정책연구실장은 생산성, 혁신, 거시경제 정책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로 꼽힌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경제 교사’ 역할을 하면서 신경제를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또 1998년 맥킨지컨설팅 고문으로 일하면서 맥킨지의 ‘한국 경제 보고서’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49년 미국 시카고 출생 △영국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졸업 △1972년 MIT 경제학 박사 △1973년 MIT 교수 △1979년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1999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2007년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현), 맥킨지글로벌연구소 선임고문(현)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