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 단원경찰서 소속 라 포마라 경사(캄보디아 출신)가 안산 다문화특구에서 순찰 도중 캄보디아 이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안산=김태호 기자
경기 안산 단원경찰서 소속 라 포마라 경사(캄보디아 출신)가 안산 다문화특구에서 순찰 도중 캄보디아 이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안산=김태호 기자
“사람들이 저를 계속 무시합니다. 한국에서 혼자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지난 8일 오후 7시께. 경기 안산 단원경찰서 소속 다문화지원센터로 한 중국인 여성이 찾아왔다. 안산 근처 공장에서 청소 일을 한다는 그는 “사람들이 내 청소도구를 계속 숨기는 것 같다”며 “한국엔 친구도 없어서 어디에 도와달라고 할 곳이 없다”며 눈물로 하소연했다. 이 센터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귀화 경찰관 라 포마라 경사(33)는 이 여성의 사연을 듣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혼자 한국에서 적응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는 것을 정말 잘 이해한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을 적어줄 테니 혹시나 물건이 사라지는 일이 있어 전화하면 경찰이 금방 달려갈 것”이라며 쪽지에 센터번호와 ‘112’ 번호를 적어 건네줬다.

[경찰팀 리포트] 이주민의 든든한 징검다리…"우리는 대한민국 경찰입니다"
경기 광주경찰서 정보보안계 소속 이보은 순경(28·베트남 이름 응우옌 티본)은 최근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 파견돼 선수단 통역과 생활지원을 했다. 대회기간 내내 베트남 선수들 도우미 역할을 했다. “가족들에게 한국 화장품과 홍삼을 선물하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선수들에겐 인천 구월동 일대 상점들을 소개해줬다. 이 순경은 “고향에서 온 선수단을 보니 반가웠고, 대한민국 경찰로서 이들에게 통역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다”고 말했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18명의 귀화 경찰관이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 정착하려는 이주민들을 위해 쉬는 날에도 상담 시간을 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종종 발생하는 외국인 범죄사건 해결을 위해 자국 출신 동포들의 네트워크를 활용, 핵심적인 정보를 파악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서는 외국인 손님을 안내하는 든든한 ‘대한민국 홍보대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내에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이들 귀화 경찰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주민 돕고 싶어”…경찰이 되기까지

경찰엔 18명의 귀화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다. 중국 출신이 13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베트남 출신이 2명이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출신이 1명씩이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과정을 거쳐 대한민국 경찰이 됐지만, 초심은 ‘이주민을 돕고 싶다’는 것이었다. 2004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이 순경의 어릴 적 꿈은 경찰이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공개채용 제도가 없어 인맥 없이는 경찰이 되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결혼 생활을 하던 이 순경은 2012년 동두천 다문화지원센터에서 1년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경찰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국제결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고 상담을 요청하는 다문화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2012년 한 차례 경찰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뒤 2013년 재도전해 베트남 출신으로는 두 번째 한국 경찰이 됐다.

수원 남부경찰서 오포파출소 소속 주지강 경사(44)는 범죄 관련 통역 활동을 하다가 경찰이 된 경우다. 그는 인도네시아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던 당시 아르바이트로 취업한 한 완구공장에서 지금의 부인인 한국인 여성을 만났다. 1995년 한국으로 건너와 이 여성과 결혼하면서 본격적인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그를 경찰의 길로 인도한 사람은 대학 시절 만났던 한국인 유학생 친구였다. 역시 경찰인 이 친구는 인도네시아 관련 범죄가 있을 때마다 통역 봉사를 요청했다. 주 경사는 “통역을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경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친구가 준 경찰 공무원 시험 교재로 공부해 2008년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경찰팀 리포트] 이주민의 든든한 징검다리…"우리는 대한민국 경찰입니다"
외국인 범죄 예방활동에도 ‘열성’

현재 이들은 이주민 상담부터 굵직한 외국인 범죄예방까지 외국인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 언어가 통하는 지역 출신 이주민을 상담하는 것은 이들의 기본적인 업무다. 라 경사는 안산 다문화특구를 주로 순찰하며 이주민들과 대화를 나눈다. 안산 다문화특구에는 현재 1만6600명의 이주민이 산다.

순찰 중엔 모국인 캄보디아에서 온 이주민들이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의 걱정거리를 늘어놓는다. 그는 “대화를 하다 보면 이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되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해 범죄에 노출되는 일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 경사는 경남 김해에서 근무할 때 다양한 외국인 범죄 첩보를 파악해 두 차례 특진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김해에선 외국인 근로자들이 절차를 몰라 원동기를 무면허로 운전하다 전과자가 되는 사례가 많았다. 이에 주 경사는 ‘외국인 원동기 운전면허반’을 만들어 이들의 면허 취득을 도왔고, 이 지역의 외국인 범죄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 경사는 경찰 생활 중 특히 2009년 국제합창단대회에 참석한 인도네시아 단원 10여명이 신종플루에 걸렸던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는 “당시 대회가 열린 김해 인제대에서 상주하면서 통역과 치료 지원 활동을 벌였다”며 “모두 완치돼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도네시아 주민들과 정보를 교환한다. 근무지는 수원으로 옮겼지만 관련 첩보가 있을 때면 경남 지역 경찰관들에게 조언하기도 한다.

주 경사와 이 순경, 필리핀 출신 아 나멜 경사, 중국 출신 박연춘 경장 등 4명은 인천 아시안게임 현장에 파견돼 각국 선수단의 통역을 도맡았다.

그들의 꿈은 모국의 경찰 주재관 파견

귀화해 한국 경찰관이 된 이들은 모국에서 온 이주민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최근에는 “나도 경찰이 되고 싶다”며 공부하는 방법과 경찰 채용과정 등을 문의하는 이주민이 부쩍 늘었다. 안산에서 만난 한 외국인 노동자는 “미국에 사는 한국 동포들도 지역에 한국계 경찰관이 있으면 훨씬 편안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들었다”며 “우리에겐 귀화한 경찰관들이 그런 존재로 늘 자랑스럽고 든든하다”고 말했다.

경찰의 외국어 전문요원 선발에는 해마다 많은 귀화자가 ‘대한민국 경찰관’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75명을 선발한 외국어 전문요원 채용엔 559명이 지원해 최종 경쟁률은 7.4 대 1을 기록했다. 최종 선발된 귀화 경찰관은 4명 정도였지만, 실기시험을 통과한 219명 중 귀화자는 45명으로 전체의 20.5%에 달했다.

이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귀화 경찰관은 대부분 모국에 파견돼 근무하는 경찰 주재관을 꿈꾸고 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해 보였던 경찰의 꿈이 현실이 된 것처럼 도전하면 이뤄질 수 있다고 이들은 믿고 있다.

이 순경은 “베트남에 있을 때부터 경찰을 꿈꿨지만, 베트남에선 공개채용 시험이 없어 경찰이 될 수 없었다”며 “한국에서 꿈을 이뤄 기쁘고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에서 경찰 주재관으로 일해 보고 싶다”고 했다. 주 경사 역시 “38세에 뒤늦게 경찰이 됐지만 빨리 승진해 인도네시아에서 경찰 주재관으로 근무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