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어느 기금담당 부총장의 하소연
“절박합니다.” 지방의 대형 국립대 부총장인 A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5일 마련한 제1회 대학기금 선진화포럼에 참석했던 그는 “기금 운용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도 곧 일본처럼 제로 금리가 될 거 아닙니까. 은행에 넣어둬 봤자 손해라는 건데 정부가 공익 차원에서 장학금용 대학기금만이라도 연 1~2%포인트 이자를 더 주도록 하면 안될까요? 한경이 국회의원들에게 잘 좀 말해주세요.”

A교수의 전공은 조선해양공학이다. 몇 달 전 발전기금을 모으고, 모은 돈을 불리는 일을 떠맡자 앞이 깜깜해졌다고 했다. A교수는 딱 잘라 말했다. “금리 특혜를 받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논리는 이랬다. “4년 임기의 총장이 주식에 돈을 넣겠습니까. 아니면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하겠습니까. 원금 까먹으면 큰일 난다고 믿고 있는데요. 동문들이나 기업에 손을 벌리는 수밖에요.”

서울대 역시 발전기금 담당 직원 26명의 주 업무는 기부금 모집이다. 운용을 통한 덩치 불리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공수표도 남발된다. 기업인 B씨는 기부금을 내달라는 요청에 난감해하다 ‘일단 서명하시고 편할 때 납부하시라’는 말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총장들이 치적으로 내세우는 기부금 모집액의 상당수는 이런 공수표의 총합이다.

사립대라고 다르지 않다. “고금리와 부동산값 상승 시절에 덕을 본 몇 개 대학만 형편이 괜찮을 뿐 전국 343개 대학의 85%인 사립대 다수가 재정 건전성이 취약하다”고 길용수 한국사학진흥재단 감사팀장은 말했다. 한 대학 재무팀장은 “ELS로 10억원을 벌어줄 땐 별말 없다가 원금 보장형 ELS 투자가 잘 안돼 원금만 건졌더니 은행 예금보다 못하다고 질책받는 게 대학기금 운용의 현실”이라고 했다.

한완선 명지대 교수는 대안을 이렇게 제시했다. “조막손 규모로는 안됩니다. 대학들이 뭉쳐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합니다. 운용은 시장에서 검증된 전문가에게 맡기면 됩니다.” 다른 정부기금처럼 ‘투자풀’ 방식으로 대학기금 11조원을 운용하자는 제안이다. 교육부와 대학협의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박동휘 증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