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관객 외면한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 음악당(콘서트홀, IBK챔버홀, 리사이틀홀)의 평일 공연 시작 시간을 2015년에도 현행 오후 8시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공연 특성에 따라 유동적으로 시작 시간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전당이 20일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음악당의 공연 시작 시간을 내년부터 30분 앞당기려던 당초 계획을 원점으로 돌린 것이다. 관객들이나 연주단체 공연기획사 모두 반기면서도 관객 편의를 생각하지 않은 예술의전당의 섣부른 결정에 볼멘 표정이다.

이번 해프닝은 예술의전당이 고학찬 사장 명의로 최근 주요 연주단체와 공연기획사에 “내년부터 음악당의 공연 시작 시간을 오후 8시에서 오후 7시30분으로 앞당긴다”는 공문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해설 음악회 등으로 공연 시간 자체가 길어지고 있고, 앙코르에 팬사인회까지 하면 오후 11시를 넘기는 때도 있어서 귀가하기 불편하다거나 집에 가기 위해 미리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들로 공연장 분위기를 해친다는 불만이 있어 조정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예술의전당 게시판에는 공연 시간을 앞당겨선 안된다는 글이 잇따랐다. “지금도 저녁식사도 못한 채 가까스로 오후 8시 공연을 보는데, 7시30분에 시작하면 공연 관람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단골 관람객의 불만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오후 8시 공연을 보려면 서울 강북에선 늦어도 6시30분에는 출발해야 한다. 강남 지역에서도 한 시간 가까이 걸린다. 예술의전당은 지하철역(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도 걸어서 20분 걸린다. 주변 도로는 상습 정체구간이다.

한 공연단체 관계자는 예술의전당 측이 번복하자 “다행”이라고 말했다. 공연계 최고의 ‘갑’으로 손꼽히는 예술의전당 결정에 공연기획사, 공연단체 등이 반대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관람객들의 우려가 커지자 예술의전당은 뒤늦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처음부터 그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공연의 소비자인 관객 의견을 간과했던 것이 이번 해프닝의 원인이다.

이승우 문화스포츠부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