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겨도 지는 불법파견소송
‘독이 든 성배’일 수도 있다. 지난달 18일과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현대자동차 하청근로자들의 손을 화끈하게 들어줬다. 프레스, 도장, 의장 할 것 없이 모든 공정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는 2차 하청업체 근로자까지 포함시킨 것도 이례적이다. 공정이 아예 분리된 기아차 사건에서도 같은 취지로 판결이 났다. 노동계 스스로도 ‘예상을 뛰어 넘은 판결’이라 할 만하다.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업무내용과 기술이 다변화하면서, 산업 현장은 대단히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원청회사가 지시를 한 ‘사실’이 있다는 건지, 그런 지시권 행사가 시스템화된 것인지 꼼꼼히 따져 볼 일이다. 또 업무장소가 같다는 건지, 그곳에서 수행할 업무가 뒤섞여 있다는 건지도 섬세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래도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게 불법파견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다. 그래서 오히려 불안하다. 그만큼 현실과의 괴리도 커지고, 법이론적 반론 여지도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불법파견소송에서 승자란 없다는 사실이다. 굳이 있다면 변호사뿐이다. 이유는 이렇다. 불법파견소송은 제재만을 다투지 않는다. 근로자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유감스럽게도 노사관계란 시킨다고 온전히 형성되는 게 아니다. 마음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 5년이고 10년이고 소송에 매달리는 이유도 실은 여기에 있다. 긴 소송이 용케 끝나더라도 갈등은 그대로 남는다. 이게 더 큰 문제다. 가령 하청근로자가 승소해서 직영근로자로 전환됐다 치자.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수년 동안 얼굴을 붉히고 뒤엉켜 싸운 사이다. 사내로 장소만 옮겼을 뿐 갈등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반대로 하청근로자가 패소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싫을 만큼 참담할 것이다. 수년 동안 생계를 내팽개치고 소송에만 매달렸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측도 마찬가지다. 첨단기술을 개발해도 모자랄 시간에 회사 이미지를 구겨가면서 소송한다고 허송세월했으니 말이다.

불법파견소송은 이렇듯 ‘이겨도 지고, 져도 지는’ 묘한 소송이다. 그런데도 소송이야말로 문제해결의 ‘특효약’인 것처럼 비쳐질까 우려된다. 본질적 해법은 원·하청 간 자율적 협력에서 찾는 게 옳다.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자동차 하청근로자에 대한 직영전환 합의는 그래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그 의미마저 사뭇 퇴색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입법적 손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불법파견의 구체적 판단기준을 명확히 제시하고, 외부 인력의 활용방식과 범위도 현실에 맞도록 매뉴얼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파견법을 갖고 정작 채용을 다투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재판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불필요한 오해도 또한 막을 수 있다.

외주화는 세계적 추세다. 물론 외주화가 늘 정답일 수는 없다. 무분별한 외주화는 오히려 엄청난 손실을 유발할 수도 있다. 몇몇 대형 금융회사에서 고객정보 유출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무분별한 외주화가 초래한 부작용이다. 그렇다고 외주화 그 자체를 불법시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업 스스로 외주화로 인한 이익과 불이익을 잘 고려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일이다. 이참에 기업의 그런 선택에 대해 과연 법원이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도 한번쯤 고민해 봤으면 한다. 언제부터인가 노·사·정 모두 오로지 법원 판결만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권혁 <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khyuk29@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