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 키운 컴퓨터·노인 돌보는 로봇…IT업계 '실버 서퍼' 잡아라
손녀의 발레 연습 장면을 실시간 영상으로 지켜보고, 102세 생일에 찍은 사진을 트위터 친구들과 공유하는 이른바 ‘실버 서퍼(silver surfer·인터넷을 즐기는 노인)’가 정보기술(IT) 산업의 새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60세 이상 돈 많은 베이비 부머를 겨냥해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전용 기기 등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 보도했다.

영국 방송통신 규제기관 오프콤에 따르면 영국인 베이비붐 세대(55~64세)의 인터넷 사용률은 2011년 25%에서 현재 약 35%로 증가했다. 미국은 60%를 넘어섰다. 이들 그룹의 온라인뱅킹 이용률은 2005년 대비 두 배로 늘었고, 4분의 1 이상은 유튜브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즐긴다. 베이비붐 세대 10명 중 9명이 ‘셀피(셀카)’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IT기업은 실버 세대를 잡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스웨덴의 시니어 전용 스마트폰 제조사 ‘도로’는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등의 자판 크기를 키우고 단순화시킨 제품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애완견 역할과 스마트 기기를 결합한 노인 돌봄 로봇 ‘지보’, 일본 후지쓰가 내놓은 긴급호출 기능을 갖춘 전화 등도 인기다. 노년층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서비스인 ‘실버서퍼닷컴’은 지난해 말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월평균 방문자 수가 25만명을 넘어섰다. 노인 건강과 관련한 모바일 헬스케어 시장은 2020년 세계적으로 234억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실버 세대가 IT에 눈을 뜨면서 장례 문화도 변하고 있다. FT는 “IT가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었던 상조산업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며 “자신이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장례식을 직접 설계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년층과 과거 세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구매력이다. IT업계뿐 아니라 자동차, 부동산, 유통 등 산업 전반에서 ‘실버 이코노미’를 겨냥한 상품을 개발 중이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0년 노년층이 된 베이비부머의 구매력은 15조달러(약 1경58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2050년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는 20억명으로 현재의 약 두 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IHS오토모티브에 따르면 65세 이상 미국인이 구입한 신차는 올 들어 전체 판매량의 20%를 차지해 2004년(11%)보다 9%포인트 증가했다. 포드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100세 노인이 운전하는 것은 몇 년 안에 일상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드는 노인 고객을 잡기 위해 운전자의 심장발작을 감지해 자동차 스스로 안전하게 정지하도록 하는 차량용 시트를 개발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노인들의 인지·반응 능력이 상대적으로 무디다는 점에 착안, 이를 보완할 센서가 부착된 차량 개발에 나섰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