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22일 오전 4시32분

“‘뚜루룩 뚜루룩’ 소리 나는 보일러 주세요.”

‘귀뚜라미’ 보일러의 본래 회사명은 로케트 보일러다. 하지만 귀뚜라미 보일러로 더 많이 알려졌다. 연료가 떨어졌을 때 나는 알람 소리가 귀뚜라미 우는 소리 같아 이렇게 불렸다. 1962년 창립 이후 30년 만인 1992년엔 아예 사명을 귀뚜라미보일러로 바꿨다. 회사 이름이 달라진 것과 관계없이 국내 보일러 시장 1위 자리는 지난 53년간 줄곧 귀뚜라미그룹의 몫이었다. 기업인수를 통해 외형을 키우고 있지만 그룹의 매출 신장세가 주춤하면서 성장성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회사는 안정된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기업 인수와 해외 진출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3無’ M&A로 성장

귀뚜라미그룹은 2000년대 들어 국내 냉동·공조 업체들을 인수해 냉·난방 복합기업으로 변신에 나섰다. 2003년 센추리 아산공장, 2006년 범양냉방공업(현 귀뚜라미범양냉방), 2007년 경신산업(현 귀뚜라미냉동기계), 2008년 신성엔지니어링 및 동광에너텍(현 귀뚜라미동광), 2009년 센추리 및 대우일렉트로닉스 에어컨사업부 등을 차례로 사들였다. 회사 관계자는 “수익성 높고 기술집약적인 냉·난방 복합그룹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귀뚜라미는 과감한 기업 인수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50여년간 ‘무차입’ 경영을 고수하며 보유 현금만 5000억~6000억원에 달한다. 비연결 계열사를 포함한 그룹의 연간 매출은 1조원에 달하지만 부채비율은 2010년 24.8%에서 2011년 23%, 2012년 17.1%, 작년 15.9%로 줄고 있다.

귀뚜라미가 주목하는 기업은 △보일러 전후방산업 및 에너지 연관업종 기업 △자산 가치가 높은 회사 △주당순자산가치(PBR)가 높은 업체 등이다.

귀뚜라미는 기업인수와 관련, ‘3무(無) 전략’을 일관되게 쓰고 있다. 인수한 기업에 간섭하지 않는다. 이른바 ‘점령군’으로 불리는 파견 임원도 없다. 인적 구조조정이나 ‘인수후 통합작업(PMI)’도 없다.

○해외시장 공략이 관건

귀뚜라미그룹 전체 매출은 2011년 9500억원에서 2012년 9300억원, 2013년 9100억원으로 하락세다. 그룹 매출의 70~80%를 차지하는 냉·난방 부문이 건설 산업과 연동되는데, 최근 건설 경기 침체로 교체수요가 줄었다.

이에 따라 귀뚜라미그룹의 매출 수익성을 나타내는 매출총이익률(매출 총이익에서 총매출액을 나눈 비율)은 2012년에 이어 작년 19.4%(연결 기준)로 정체를 보였고 영업활동의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은 7.2%에서 6.1%로 떨어졌다.

귀뚜라미그룹은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2020년까지 연매출 3조원을 달성하고 이 중 해외에서 1조5000억원을 벌어들인다는 목표다. 주력 분야인 보일러와 냉방기기 부문에서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부품만 수출해왔지만 향후엔 자체 브랜드를 단 완제품으로 승부를 걸 계획이다. 다른 계열사들도 공격적으로 해외 공략에 나선다. 원자력 발전소용 설비 전문업체인 센추리는 중동, 중국 등의 원전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고, 클린룸용 공조업체인 신성엔지니어링도 미국 시장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해외 거점에 대한 구조조정도 진행하고 있다. 사업이 부진한 터키 법인을 청산하고 냉방 부문은 동남아시아, 온수 보일러 부문은 북미와 동구권 등으로 나눠 집중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동유럽 벨라루스에 현지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김태성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귀뚜라미그룹은 주력 사업부문 주요 경쟁사인 경동나비엔 등에 비해 해외부문이 약하기 때문에 더 공격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러시아와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향후 수익성 개선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최진민 회장은
모르면 손 안댄다 ‘철칙’ … 운전기사 안두는 ‘짠돌이 경영’


귀뚜라미그룹은 보수적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5000억원이 넘는 현금성 자산은 대부분 은행 예금이나 채권으로 운용한다. 귀뚜라미그룹 관계자는 “최진민 회장의 최우선 경영 철학은 ‘안전성’”이라며 “잘 모르는 분야의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회사의 철칙”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2000cc급 차량을 본인이 직접 몰고 다닌다. 주말에 골프를 즐길 때도 손수 카트를 운전한다. 귀뚜라미그룹 임직원들이 귀뚜라미랜드가 소유한 골프장인 한탄강CC에 갔다가 조경수 가지치기를 하는 최 회장을 보고 화들짝 놀라 숨었다는 일화도 있다.

최 회장은 슬하에 2남 3녀를 두고 있다. 장남인 성환씨(37)가 일찍부터 후계자로 낙점돼 경영자 수업을 받고 있다. 오너 2세들이 흔히 가는 경영학석사(MBA) 유학을 가는 대신 말단 직원으로 공장에 들어가 직접 보일러를 조립하고 AS 일을 했다. “보일러 기술은 외국보다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는 최 회장의 지론을 따른 것이다. 현재 귀뚜라미그룹 해외사업본부 상무로 해외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본격화되지 않았다. 최 회장이 지분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올해 74세인 그는 매일 3시간 수면을 취하며 새벽 3시에 일어나 5시부터 7시까지 테니스를 치며 건강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사 전환 등의 지배구조 개편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경영 승계가 이뤄질 경우 정정당당하게 세금을 내고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안대규/고경봉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