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거북이와 '세컨 윈드'
얼마 전 ‘서울달리기 대회’에 참가했다. 2011년부터 시각장애인 레이스 도우미로 10㎞ 코스를 뛰고 있는데 매번 완주를 목표로 뛰어서 그런지 아직 중도에 포기한 적은 없었다. 가끔이나마 마라톤 행사에 참여해 완주하고 나면 ‘토끼와 거북이’를 떠올리게 된다.

‘토끼는 상대를 보았고 거북이는 목표를 보았다.’ 누구나 아는 교훈을 이렇게 설명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경쟁자만 쳐다보거나 주변 환경에만 신경쓰는 사람은 자기 목표를 정확히 알고 꾸준히 정진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비단 이솝우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경주마들을 보면 으레 눈 양옆을 가리개로 막은 채 경주에 임하는 경우가 많은데 옆에서 추월하려는 경쟁마나 관중의 환호가 오히려 말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란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리면 위기나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중간에 만나는 장애물을 극복해야 목표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만 보고 뛰면 상대가 크게 뒤처지거나 크게 앞서가는 순간 스스로의 추진 동력을 상실하기 십상이다.

마라톤이나 등산처럼 근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을 하다보면 심장이 터질 듯하고 죽을 만큼 힘든 시점이 서너 번 찾아온다. 운동 이론에서는 ‘데드포인트’라고도 하는데 이때 레이스를 멈추면 웬만해서는 재개할 수 없다고 한다.

어느덧 올해도 마라톤으로 치면 레이스 후반부에 접어들었다. 금융권은 올 한 해 이런저런 사고로 위기의 시간을 보냈다. 금융회사들 역시 토끼처럼 궁극의 목표 지점인 고객이 아니라 경쟁자만 보고 뛴 것은 아닌지, 혹은 눈가리개를 하지 않은 경주마처럼 주변의 시선에 집중력을 잃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시기다.

데드포인트와 짝꿍처럼 따라붙는 말이 바로 ‘세컨윈드’다. 숨이 멈출 것 같이 힘든 데드포인트를 극복하면 오히려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호흡도 한결 편안해지는 세컨윈드 상태를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거북이는 아마 수없는 데드포인트를 극복하고 세컨윈드 속에 미소지으며 골인했을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세컨윈드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명확하다. ‘고객에 집중하라’ 거북이의 승리처럼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이순우 < 우리금융지주 회장 wooriceo@woorif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