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명과학의 ‘유트로핀’(사진)은 국내 1호 인성장호르몬이다. 각종 유전적 이유 때문에 왜소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1993년 처음 출시된 이후 20년 동안 인성장호르몬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성장호르몬은 당시에는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제품이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유트로핀은 최근 ‘유트로핀 20년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이라는 책자를 통해 그동안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국내 유전공학 상품화한 제품

유트로핀은 국내에서 유전공학을 이용해 상품화한 제품 중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전까지 국내에 수입된 외국 제품이 대장균을 이용한 데 비해 유트로핀은 최초로 효모를 활용한 방식으로 제품의 안정성과 순도 등 경쟁력을 높였다. 198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저신장증’, 즉 키가 평균보다 극히 작은 사람을 치료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드물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경제적 성장과 함께 외국산 치료약물이 등장하면서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저신장 치료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당시 LG생명과학은 시대를 좌우할 기술로 유전자 재조합에 주목하고 있었다.

LG생명과학이 인간 성장호르몬 개발에 들어간 것은 1987년. 인구 1만명당 1명꼴로 성장호르몬 결핍성 왜소증으로 고통받고 있고 잠재성 환자까지 포함, 국내에만 10여만명 이상에게 필요한 제품이지만 그동안 전량 외국에서 수입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1회 주사에 10만원이 넘고 1주 치료 시 50여만원, 1년 치료 시 2000만원이 넘는 엄청난 비용 때문에 국내에서도 일부 계층만 혜택을 받고 있었다.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985년 미국 제넨테크가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이후 스웨덴, 덴마크, 이탈리아에서 인간성장호르몬을 개발했지만 제조 방법은 모두 대장균을 활용한 방식이었다. LG생명과학은 효모를 이용한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특히 인성장호르몬이 국내에서 처음 개발됐기 때문에 당시 보건당국의 허가 과정과 각종 병원의 임상시험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소아내분비학회 의료진과의 협업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1989년 비로소 시제품을 생산했다.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와 7~13세 왜소증 환자 100명을 대상으로 서울대 연세대 가톨릭대 등의 임상시험 결과 환자의 치료 전 연간 평균 성장 속도가 3㎝ 정도였음에 비해 치료 후(1주 6회 주사 시) 성장 속도는 약 12㎝로 성장 장애에 높은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트로핀 출시 20년, 또 다른 시작

1993년 일찍이 산학협력의 과정을 거쳐 유트로핀이 정식 출시됐다. 이전까지 성장호르몬은 전량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았지만 유트로핀의 개발 성공에 힘입어 장기간 치료받아야 하는 환아와 보호자 가족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는 길이 열렸다.

1993년 1월 출시 직후 단숨에 국내 성장호르몬 시장 점유율을 절반 가까이 늘렸고 개발 당시 매년 200만달러어치 이상 외국에서 수입해야 했던 외국산 성장호르몬을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동시에 다른 외국 제품 가격도 떨어지는 부수 효과까지 거뒀다.

유트로핀은 국내 소아내분비학계와 업체 협업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국내 유전자 재조합 성장호르몬의 효시로 출발한 유트로핀은 이후 여러 가지 적응증 확대와 서방형 제품인 유트로핀 플러스 출시 등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며 LG생명과학의 대표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