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진 대표
정남진 대표
‘정치는 생물이다’는 말이 있는데 비즈니스 현장에서 보면 시장이야말로 생물이다. 2000년대 초 인터넷 뉴스가 등장할 즈음 국내외 뉴스 시장은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미디어 시장도 생물처럼 꿈틀거리고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터넷 뉴스 매체가 혜성처럼 등장하고 기존 매체 판도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필자도 당시 라디오방송 뉴스를 전문으로 하는 모(母)매체에 인터넷 뉴스 사업 론칭을 제안했다. 필자는 모(母)매체의 인터넷 분야 자(子)회사 대표로 일하고 있었다.

기존 뉴스와 다른 새로운 뉴스, 인터넷 시대의 감각과 트렌드를 담아내는 새로운 뉴스를 모토로 브랜드부터 새롭게 바꾸기로 했다. 모(母)매체의 브랜드는 50년이 넘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뉴스의 혁신은 브랜드에서부터 시작돼야 했다. 인터넷 자회사의 젊은 직원들과 함께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치면서 새 뉴스에는 모(母)매체가 오랜 세월 지켜온 저항 정신과 독특한 색깔, 라디오방송의 속보성을 담아내기로 결론을 내렸다.

‘저항 정신과 색깔, 속도’의 메시지를 담은 절묘한 브랜드는 없을까. 백가쟁명식으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다. 네이키드뉴스, 깜짝뉴스, 스팟뉴스 등. 쏙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20대 여성 웹기획자의 입에서 우리나라 인터넷 뉴스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튀어나왔다. 노. 컷. 뉴 .스. 모두 무릎을 쳤다. 이어 브랜드 아이디어는 ‘노컷(Nocut), 노에딧(NoEdit)’으로 발전했고,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검열에 굴하지 않았던 모(母)매체의 저항 정신과 컬러를 담아내기에 적절한 브랜드로 결론 지었다. 문제는 갓 태어난 ‘햇브랜드’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였다.

스토리가 필요했다. 서비스의 핵심 메시지와 감동을 잘 담은 브랜드 스토리를 구상했다. ‘검열에 굴하지 않았던 저항 정신, 노컷뉴스의 정신입니다’는 메시지를 담아 핵심 스토리를 개발하고, 20대 여직원이 주도한 브랜드 탄생 스토리와 대학생 인턴들의 참신한 특종 발굴 스토리 등 서브 브랜드 스토리들을 만들어 나갔다.

# 메시지·재미 어우러진 스토리는 큰 힘 발휘

메시지와 재미가 잘 어우러진 브랜드 스토리는 큰 힘을 발휘한다. 접착제 개발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하다 우연히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메모지를 발명했다는 포스트잇 탄생 스토리에는 ‘혁신을 추구하고 고객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한다’는 3M의 가치와 재미가 잘 녹아 있다. 3M은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제품 개발 과정의 시행착오를 정확하게 포착해 핵심 스토리로 개발했다. 이 브랜드 스토리가 3M의 포스트잇을 세계적인 히트상품의 반열에 올려 놓는 역할을 했다.

스토리는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 기업의 마케팅 스토리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완성도가 높은 스토리가 아니다. 고도의 작가적 역량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다만, 다양한 매체로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도록 OSMU(OneSource MultiUse) 활용을 염두에 두면 충분하다.

노컷뉴스의 브랜드 스토리는 전문 작가가 아닌 직원들의 프레젠테이션(PT) 자료 형식으로 만들어 다양한 매체에 활용됐다. 20대 여직원의 감각에서 나온 브랜드 탄생 에피소드, 대형 특종을 낚아 올린 ‘겁 없는’ 대학생 인턴기자들의 스토리는 가벼운 서브 브랜드 스토리로 다듬어져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입소문과 강연, 기고, 세미나 발표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퍼져 나갔고, 이런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대중에게 ‘노컷뉴스는 새로운 감각과 사고를 가진 젊은이들이 만든 젊은 뉴스’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 진정성 있고 공감 끌어내는 이야기 필요

서울 성수동의 수제화 거리를 활성화하기 위해 서울시가 주도한 ‘성수동 구두가게 이야기’는 잘 기획한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성공사례다. 성수동의 구두 장인과 그의 딸 ‘수화’라는 가상의 캐릭터가 펼치는 일상의 얘깃거리들이 글과 동영상, 웹툰, 이벤트 등으로 가공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이런 소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수제 구두가 우수하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소비자에게 전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 시대로 접어들면서 스토리의 힘은 이야기 스케일보다는 이야기의 진정성에 좌우되고 있다. 스케일이 작더라도 진정성 있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스토리가 소셜 공간에서는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하기에 더 효과적이다. 지난주 글에서 예로 든 스위스 오베르무텐의 이야기는 작지만 순박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스토리다.

스토리는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야 한다. 기업의 브랜드 스토리는 대중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을 때 마케팅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 시대에는 스토리의 발굴과 제작도 중요하지만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스토리를 잘 소비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남진 < 이노미디어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