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옐런의 빈부격차 독설…'피케티 에볼라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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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후 자산계층 소득 급증
부유세 논쟁 상당기간 지속될 듯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부유세 논쟁 상당기간 지속될 듯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양적 완화 종료를 앞둔 시점에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생뚱맞게 빈부격차 문제를 언급했다. 지난 1년 동안 피케티 논쟁이 거세게 불었던 데다 다음달 4일로 예정된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가장 민감한 이슈를 언급해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옐런의 독설’이라는 용어까지 나올 정도다.
문제가 된 옐런의 발언은 이렇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주식시장은 반등했지만 노동시장 회복은 더디다”며 “빈부격차는 100년 만에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위 3% 계층이 미국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위기 직후 27%에서 최근 31%로 높아졌다. 그 원인이 양적 완화에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옐런의 이런 발언은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하다. 자신이 처음 언급했던 ‘예일 패러다임’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 패러다임은 재정정책보다 더 유용하다고 봤던 통화정책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재정 건전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소비세 혹은 부유세 인상에 대해서는 전향적이다.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부유세 인상문제를 놓고 논쟁이 지속돼 왔다. 작년 8월 출간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의외로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옐런의 부유세 인상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은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처럼 ‘피케티 에볼라 바이러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피케티 논쟁을 부추기고 있다.
‘21세기 자본’의 핵심은 지난 200년 동안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본이득률(R)이 경제성장률(G)을 앞서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할수록 빈부격차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추론이다. 빈부격차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성장은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자산계층인 부자들에게 80%까지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이다.
피케티 이전의 성장과 빈부격차 간 관계는 사이먼 쿠츠네츠의 ‘역U자형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즉 성장 초기엔 빈부격차가 확대되다가 일정 시점이 지난 뒤에는 축소된다는 것이 골자다. 부유세 부과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시킬 수 있는 만큼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역U자형 가설과 같은 특정 국가의 성장과 빈부격차 관계는 노동장비율(K/L)로 설명된다. 성장 초기에는 노동장비율이 낮아 상대적으로 희소한 자본이득률이 높다. 이때 성장할수록 빈부격차는 확대된다. 하지만 갈수록 투자가 이뤄지면서 노동장비율이 급격히 올라간다. 이때부터는 자본이득률이 떨어지면서 빈부격차는 줄어들게 된다.
21세기 자본이 출간된 이후 피케티 논쟁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 정도가 약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피케티 교수를 백악관에 초청한 직후 이 논쟁은 정치적 성격이 가미되면서 한층 거세졌다. 비자산 중산층 이하 계층을 지지층으로 하는 민주당의 오바마 정부가 부유세 인상을 옹호하는 듯한 의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옐런의 발언은 한동안 잠잠했던 ‘로고프 독트린’과 ‘크루그먼 독트린’ 간 논쟁도 재연시키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오히려 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반박했다.
금융위기 이후 옐런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한 예일패러다임에서 경기침체 등과 같은 단기과제 처방은 케인시안 이론을 선호하지만 완전고용 등과 같은 장기과제 해결은 신고전학파 이론을 받아들인 독특한 정책처방 인식을 갖고 있다. 이 패러다임의 전제인 재정건전화를 도모하기 위해 크루그먼 독트린보다 로고프 독트린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빈부격차와 재정적자는 현재 미국이 민간과 공공부문에서 당면한 최대 현안인 만큼 옐런의 발언이 ‘독설’인지 ‘고도의 숨은 의도가 깔려 있는 전략’인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순수하게 통화정책 관점에서 옐런의 발언을 재해석한다면 그 배경과 진의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현재 Fed가 처한 통화정책 여건은 자산 가격이 우려할 정도로 상승한 반면 고용 창출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 때문에 옐런의 발언은 논란이 되는 양적 완화를 예고한 대로 종료해 자산거품을 해소하고, 대신 고용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로금리는 상당 기간 지속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특히 양적 완화가 종료되면 통화정책은 제로금리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때 재정지출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시장금리가 올라 제로금리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다. 옐런의 빈부격차 발언은 비록 자신의 영역 밖이지만 앞으로 입지가 더 좁아질 통화정책 효과를 거두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깔려 있는 의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문제가 된 옐런의 발언은 이렇다. 그는 “금융위기 이후 주식시장은 반등했지만 노동시장 회복은 더디다”며 “빈부격차는 100년 만에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위 3% 계층이 미국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위기 직후 27%에서 최근 31%로 높아졌다. 그 원인이 양적 완화에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옐런의 이런 발언은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하다. 자신이 처음 언급했던 ‘예일 패러다임’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이 패러다임은 재정정책보다 더 유용하다고 봤던 통화정책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재정 건전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소비세 혹은 부유세 인상에 대해서는 전향적이다.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부유세 인상문제를 놓고 논쟁이 지속돼 왔다. 작년 8월 출간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의외로 인기를 끌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옐런의 부유세 인상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은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처럼 ‘피케티 에볼라 바이러스’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피케티 논쟁을 부추기고 있다.
‘21세기 자본’의 핵심은 지난 200년 동안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본이득률(R)이 경제성장률(G)을 앞서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할수록 빈부격차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추론이다. 빈부격차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성장은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자산계층인 부자들에게 80%까지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이다.
피케티 이전의 성장과 빈부격차 간 관계는 사이먼 쿠츠네츠의 ‘역U자형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즉 성장 초기엔 빈부격차가 확대되다가 일정 시점이 지난 뒤에는 축소된다는 것이 골자다. 부유세 부과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시킬 수 있는 만큼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역U자형 가설과 같은 특정 국가의 성장과 빈부격차 관계는 노동장비율(K/L)로 설명된다. 성장 초기에는 노동장비율이 낮아 상대적으로 희소한 자본이득률이 높다. 이때 성장할수록 빈부격차는 확대된다. 하지만 갈수록 투자가 이뤄지면서 노동장비율이 급격히 올라간다. 이때부터는 자본이득률이 떨어지면서 빈부격차는 줄어들게 된다.
21세기 자본이 출간된 이후 피케티 논쟁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 정도가 약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피케티 교수를 백악관에 초청한 직후 이 논쟁은 정치적 성격이 가미되면서 한층 거세졌다. 비자산 중산층 이하 계층을 지지층으로 하는 민주당의 오바마 정부가 부유세 인상을 옹호하는 듯한 의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옐런의 발언은 한동안 잠잠했던 ‘로고프 독트린’과 ‘크루그먼 독트린’ 간 논쟁도 재연시키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오히려 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반박했다.
금융위기 이후 옐런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한 예일패러다임에서 경기침체 등과 같은 단기과제 처방은 케인시안 이론을 선호하지만 완전고용 등과 같은 장기과제 해결은 신고전학파 이론을 받아들인 독특한 정책처방 인식을 갖고 있다. 이 패러다임의 전제인 재정건전화를 도모하기 위해 크루그먼 독트린보다 로고프 독트린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빈부격차와 재정적자는 현재 미국이 민간과 공공부문에서 당면한 최대 현안인 만큼 옐런의 발언이 ‘독설’인지 ‘고도의 숨은 의도가 깔려 있는 전략’인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순수하게 통화정책 관점에서 옐런의 발언을 재해석한다면 그 배경과 진의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현재 Fed가 처한 통화정책 여건은 자산 가격이 우려할 정도로 상승한 반면 고용 창출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 때문에 옐런의 발언은 논란이 되는 양적 완화를 예고한 대로 종료해 자산거품을 해소하고, 대신 고용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로금리는 상당 기간 지속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특히 양적 완화가 종료되면 통화정책은 제로금리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때 재정지출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시장금리가 올라 제로금리까지 무력화시킬 수 있다. 옐런의 빈부격차 발언은 비록 자신의 영역 밖이지만 앞으로 입지가 더 좁아질 통화정책 효과를 거두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깔려 있는 의도로 해석하는 시각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