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돌파한 가운데 빚을 감당하지 못해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도 사상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었다. 의사 변호사 등 전통적 고소득층도 적잖게 눈에 띈다. 파산을 신청한 법인 수도 4년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26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펴낸 ‘2014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들어온 개인회생 신청은 10만5885건에 달했다. 2009년 5만4605건이었던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2010년 4만6972건으로 약간 줄었으나 2011년 이후 다시 늘기 시작해 3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빚 탕감해 달라"…개인회생 신청 10만명 넘어
개인회생은 빚이 너무 많아 모두 갚기 어려운 사람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면 부채를 성실히 갚는 조건으로 일정 부분 빚을 탕감(채무 강제 조정)해주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가계부채가 급속히 늘어난 것이 개인회생 신청자 급증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776조원이었던 가계부채는 지난해 1021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회생·파산 전문가인 최효종 변호사는 “2002년 카드대란 때는 영세민들이 많이 신청했지만 최근에는 중산층 및 고소득층도 법원을 찾고 있다”며 “갈수록 바닥 경기가 나빠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특히 벤처사업가나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들의 개인회생 신청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들 전문직은 고가 장비를 들이거나 사무실을 얻는 과정에서 초기에 빚을 많이 지는 경우가 있다”며 “전문 직종 간 경쟁 과열로 인한 수입 감소로 사무실을 제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운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법원이 빚을 한 번에 탕감받을 수 있는 개인파산 심사를 강화한 것도 개인회생 쪽에 대한 신청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파산 신청자에 대해 판사가 재산 소득 등을 선별적으로 조사했지만 지금은 모든 재산을 조사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심사를 통과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지난해 법원에 들어온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5만6983건으로 2012년 6만1546건에 비해 7.4% 줄었다.

홍승권 법무법인 매헌 변호사는 “파산 결정을 받으면 사회활동에 여러 제약이 따르는 반면 회생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기가 더 낫기 때문에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남은 자산으로 빚을 최대한 갚은 뒤 회사를 청산하는 법인파산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09년 226건이었던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지난해 461건으로 증가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 관계자는 “올해 법인파산 신청 건수가 지난해보다 늘어 처음으로 500건을 넘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법인 전체 부채는 2009년 711조6000억원에서 지난해 827조8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