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화백의 유화가 2004년 3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12만7500달러(약 12억4000만원)에 낙찰됐을 때만 해도 중국 현대미술이 주목받지 못했지만 요즘 중국 미술품은 세계 경매시장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

중국 작가들의 그림값이 2010년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근대 문인화가 치바이스의 작품 ‘송백고립도’(266×100㎝)는 2011년 5월 베이징 자더경매에서 4억2550만위안(약 736억원)에 낙찰되며 중국 회화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산수화가 리커란의 1964년 작품 ‘완산훙볜’ 역시 2012년 베이징 경매에서 응찰자들의 치열한 경합 끝에 2억9300만위안(약 507억원)에 팔렸다.
中 미술 파죽지세…최고가 그림 한국의 16배
○45억원 vs 736억원

中 미술 파죽지세…최고가 그림 한국의 16배
산수화 등 근대미술뿐 아니라 현대미술에서도 ‘아트 차이나’의 파워가 거세다. 지난해 10월 중국 현대화가 쩡판즈의 유화 ‘최후의 만찬’이 뉴욕경매에서 2330만달러(약 250억원)에 낙찰돼 아시아 현대미술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최근 미술품 거래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 홍콩과 베이징, 상하이는 세계 주요 미술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면 한국 작가의 그림값은 하향 곡선 또는 답보 상태다. 2007년 박수근 화백의 1950년대 후반 작품 ‘빨래터’가 45억2000만원에 낙찰돼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이렇다 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중섭 화백의 ‘황소’(35억6000만원), 김환기 화백(1913~1974)의 ‘꽃과 항아리’(30억5000만원) 등이 그나마 뒤를 잇고 있다.

치바이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한국화 대가들의 작품가격은 오히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께에 비해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현재 청전 이상범을 비롯해 소정 변관식, 의제 허백련, 이당 김은호, 심향 박승무 등 6대 한국화가들의 40호 크기 작품가격(2000만~7000만원)은 치바이스와 장테천 등에 비해 수백 배 벌어진 상태다.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의 지난달 경매 낙찰 총액(142억원)이 지난 6월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 시장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미술 경기가 2008년 이후 7년째 불황을 거치면서 그림값이 중국에 비해 턱없이 낮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국제 시장에서 중국과 한국 현대 미술품의 최고가 그림값은 무려 16배나 벌어졌다”며 “세계 시장에서 제값을 못 받는 것도 문제지만 국내에서 대접 못 받는 현상(domestic discount)이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미술품 손비 3000만원까지 인정해야

한국 미술이 중국에 비해 국제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이동재 아트사이드갤러리 대표는 “2013년부터 미술품(작고 작가 6000만원 이상 작품)에 양도세가 부과되면서 시장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며 “국내외 컬렉터(미술품 수집가)와 기업들이 국내 작가의 작품 구입을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금도 세금이지만 실명 노출 부담 때문에 컬렉터들이 공개적인 거래를 기피하고 그에 따라 세수증대 효과는 없이 시장만 위축시켰다는 설명이다. 2007년 6000억원 수준에 이르렀던 국내 미술품 거래시장 규모가 지난해 3900억여원으로 쪼그라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의 미술품 구입비를 손비로 인정하는 범위가 선진국과 달리 너무 적은 것도 시장 위축 요인으로 꼽힌다.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은 “정부에서는 기업의 환경미화, 장식을 목적으로 한 미술품 구매에 대해 손금 산입이 가능한 금액을 500만원까지로 제한하고 있다”며 “이를 최소한 3000만원까지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한 해 동안 거래되는 미술품의 50%가량이 건당 500만원 미만이며, 미술품 구매자의 약 90%가 개인인데, 개인이 미술품을 구입할 때 500만원까지 소득공제해주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침체한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최근 중장기 진흥 계획을 내놓았지만 미술품 수요를 늘려 시장을 떠받칠 수 있는 컬렉터들에 대한 지원책은 아예 빠졌다. 수요 진작책 없이 2018년까지 시장을 6000억원대로 키우겠다는 정부의 복안이 실현될지 의문시되는 대목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