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카펫에 에로감독 300편 애달픔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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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영화 감독에서 충무로영화 감독 첫 신고한 박범수씨(영화 레드카펫 감독)
“진짜 상업의 끝은 성인물 아니겠어요. 저는 그 시간을 통해서 진짜 영화를 배웠답니다”
영화 레드카펫의 박범수(37) 감독은 영화인을 꿈꾸며 영화를 전공한 다른 영화인과 달리 우연히 영화판에 들어온 케이스다. 들어오기는 우연이어도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영화를 찍으며 영화를 공부하고 배웠다고 한다. 공부한 기법들을 다시 영화에 활용하며 박 감독은 점차 영화인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선생님 주인공으로 한 만화제작 인기 끌며 PD의 꿈 꿔
“학창시절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님들을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리곤 했죠. 그걸 돌려보면서 친구들이 엄청 좋아했어요. 그래서 저도 신나게 그렸어요. 귀찮아서 며칠 쉬는 날에는 연재를 이어가라는 친구들의 성화가 거셌습니다.”
그의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창작의 나날이었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 중 PD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동아방송대 방송연예과에 진학하며 꿈을 키워 나갔다.
“학교에서 딱 세 명에게 방송국 인턴의 경험이 주어졌어요. 그 세 명 안에 들기 위해 엄청 노력해서 결국은 방송국 인턴이 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본 PD들의 삶은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어요. 물론 어린 나이였기에 하나만 보고 단정 지은 부분도 있지만 그 때 제 마음에서 PD는 점차 떠나가고 있었어요”
PD들이 툭하면 “관둔다”는 말을 반복하자 그는 PD란 직업이 자신이 생각하는 일과 다소 동떨어져있다고 느끼며 동경의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인턴생활을 끝내고 그는 학창시절 곧잘 했던 글쓰기 실력을 바탕으로 ‘작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컬러휴대전화기가 보급되던 2002년 핸드폰으로 만화와 콘텐츠를 즐기는 사용자가 증가하자 이를 개척하려는 스타트업 회사들이 증가했다. 박 감독도 한 콘텐츠 제작업체로부터 작가로써의 재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되며 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회사에서 코미디, 연예 그리고 성인 콘텐츠를 주로 다뤘는데 성인 콘텐츠의 경우 해외에서 판권을 사온 사진 등에 작가들이 말풍선을 활용해 스토리를 만드는 구조였어요. 코미디나 연예 관련 콘텐츠보다 투자비용은 싼 대신에 매출은 높은 구조가 되자 회사는 점차 성인물 전문 제작업체로 변화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의 회사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성인물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기존 판권을 사오는 구조에서 제작으로 선회한 회사에서 그의 역할은 점차 커졌다. 당시 그는 온전히 글만 쓰는 작가였기에 그가 쓴 대본으로 연출된 화면을 보면 그는 늘 실망했다고 했다.
“그 당시 제가 글을 쓰며 떠올렸던 것과 결과물 사이의 괴리가 있어 항상 감독님과 언쟁을 벌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에 정식으로 연출까지 도맡아 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본격적으로 연출을 시작했습니다” 학원 수업·책 바탕으로 끝없는 시도…멀고 먼 감독의 길
“처음 ‘감독석’에 앉아서 일을 하는데 하면 할수록 전에 하시던 감독님들의 위대함을 그때서야 알겠더군요”
그는 처음 맡은 작품의 촬영을 진행하며 숱한 어려움과 장벽에 부딪쳤다. 박 감독은 그 때부터 하나하나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유명 영화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서점에서 영화 관련된 책을 빠짐없이 구입해 읽고 또 읽었다.
“편집이 궁금하면 편집학원을, 조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조명학원을 다녔습니다. 그 외에도 미술, 영화마케팅 등 안다녀본 강좌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목표는 없지만 순간 빠지면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라 그 때 진짜 열심히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기특할 정도로요”
그는 300여 편의 성인영화를 찍으며 동시에 그가 공부했던 내용들을 바로바로 적용시킬 수 있었다. 시각적 효과를 주기도하고 배경 혹은 색감에 의미를 부여하는 촬영도 시도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갔다고 했다.
그의 학업방법은 듣고, 읽고, 실행하는 세 단계였다. 통상 대학교육을 통해 이론을 습득하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는 다른 감독들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다. 에로영화 감독이 그냥 찍으면 되지 왜 영화공부를 열심히 하느냐는 물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통상 성인영화의 제작비는 200만~300만원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3000만원짜리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에요. 제가 하는 것으로 제작사와는 얘기가 끝난 줄 알았으나 미국 뉴욕에서 영화공부를 한 감독님이 그 작품을 맡게 됐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결심을 했죠. ‘회사를 나가야겠다,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요”
그는 시나리오 책을 한 아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회사를 등지고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면서 세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박 감독은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 시나리오를 사고파는 ‘시나리오 마켓’에 올렸다.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본 한 제작사가 그에게 러브콜을 하면서 그는 감독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
영화 레드카펫의 박범수(37) 감독은 영화인을 꿈꾸며 영화를 전공한 다른 영화인과 달리 우연히 영화판에 들어온 케이스다. 들어오기는 우연이어도 영화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영화를 찍으며 영화를 공부하고 배웠다고 한다. 공부한 기법들을 다시 영화에 활용하며 박 감독은 점차 영화인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선생님 주인공으로 한 만화제작 인기 끌며 PD의 꿈 꿔
“학창시절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님들을 주인공으로 만화를 그리곤 했죠. 그걸 돌려보면서 친구들이 엄청 좋아했어요. 그래서 저도 신나게 그렸어요. 귀찮아서 며칠 쉬는 날에는 연재를 이어가라는 친구들의 성화가 거셌습니다.”
그의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창작의 나날이었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 중 PD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동아방송대 방송연예과에 진학하며 꿈을 키워 나갔다.
“학교에서 딱 세 명에게 방송국 인턴의 경험이 주어졌어요. 그 세 명 안에 들기 위해 엄청 노력해서 결국은 방송국 인턴이 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본 PD들의 삶은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어요. 물론 어린 나이였기에 하나만 보고 단정 지은 부분도 있지만 그 때 제 마음에서 PD는 점차 떠나가고 있었어요”
PD들이 툭하면 “관둔다”는 말을 반복하자 그는 PD란 직업이 자신이 생각하는 일과 다소 동떨어져있다고 느끼며 동경의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인턴생활을 끝내고 그는 학창시절 곧잘 했던 글쓰기 실력을 바탕으로 ‘작가’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컬러휴대전화기가 보급되던 2002년 핸드폰으로 만화와 콘텐츠를 즐기는 사용자가 증가하자 이를 개척하려는 스타트업 회사들이 증가했다. 박 감독도 한 콘텐츠 제작업체로부터 작가로써의 재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되며 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회사에서 코미디, 연예 그리고 성인 콘텐츠를 주로 다뤘는데 성인 콘텐츠의 경우 해외에서 판권을 사온 사진 등에 작가들이 말풍선을 활용해 스토리를 만드는 구조였어요. 코미디나 연예 관련 콘텐츠보다 투자비용은 싼 대신에 매출은 높은 구조가 되자 회사는 점차 성인물 전문 제작업체로 변화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의 회사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성인물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기존 판권을 사오는 구조에서 제작으로 선회한 회사에서 그의 역할은 점차 커졌다. 당시 그는 온전히 글만 쓰는 작가였기에 그가 쓴 대본으로 연출된 화면을 보면 그는 늘 실망했다고 했다.
“그 당시 제가 글을 쓰며 떠올렸던 것과 결과물 사이의 괴리가 있어 항상 감독님과 언쟁을 벌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에 정식으로 연출까지 도맡아 보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본격적으로 연출을 시작했습니다” 학원 수업·책 바탕으로 끝없는 시도…멀고 먼 감독의 길
“처음 ‘감독석’에 앉아서 일을 하는데 하면 할수록 전에 하시던 감독님들의 위대함을 그때서야 알겠더군요”
그는 처음 맡은 작품의 촬영을 진행하며 숱한 어려움과 장벽에 부딪쳤다. 박 감독은 그 때부터 하나하나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유명 영화 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서점에서 영화 관련된 책을 빠짐없이 구입해 읽고 또 읽었다.
“편집이 궁금하면 편집학원을, 조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조명학원을 다녔습니다. 그 외에도 미술, 영화마케팅 등 안다녀본 강좌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목표는 없지만 순간 빠지면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라 그 때 진짜 열심히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기특할 정도로요”
그는 300여 편의 성인영화를 찍으며 동시에 그가 공부했던 내용들을 바로바로 적용시킬 수 있었다. 시각적 효과를 주기도하고 배경 혹은 색감에 의미를 부여하는 촬영도 시도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갔다고 했다.
그의 학업방법은 듣고, 읽고, 실행하는 세 단계였다. 통상 대학교육을 통해 이론을 습득하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는 다른 감독들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다. 에로영화 감독이 그냥 찍으면 되지 왜 영화공부를 열심히 하느냐는 물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통상 성인영화의 제작비는 200만~300만원입니다. 그런데 한번은 3000만원짜리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에요. 제가 하는 것으로 제작사와는 얘기가 끝난 줄 알았으나 미국 뉴욕에서 영화공부를 한 감독님이 그 작품을 맡게 됐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결심을 했죠. ‘회사를 나가야겠다,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요”
그는 시나리오 책을 한 아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회사를 등지고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면서 세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박 감독은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 시나리오를 사고파는 ‘시나리오 마켓’에 올렸다.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본 한 제작사가 그에게 러브콜을 하면서 그는 감독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