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혁신도시 내 건설현장 인도에 각종 건설자재와 불법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다.
나주혁신도시 내 건설현장 인도에 각종 건설자재와 불법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다.
“수용소 생활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27일 전남 나주 빛가람혁신도시 내 4단지 LH 아파트 주민 김모씨(35)의 말이다. 4개월 전 남편을 따라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그는 “쾌적한 정주 여건이라는 말과 달리 일상생활의 고통과 불편이 심각하다”며 “특히 비가 내리는 궂은 날이면 진동하는 축산 악취 때문에 잠을 못 이룰 지경”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여름철 무더위에도 악취 때문에 아파트 창문을 꼭꼭 닫고 살았다”며 “수개월째 나주시 등에 고통을 호소했으나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대책이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진동하는 축산 악취

전남 나주시 금천·산포면 일대 733만㎡ 규모로 조성되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은 지난해 7월 우정사업정보센터를 시작으로 9개 기관이 이전하는 등 갈수록 도시의 면모를 빠르게 갖춰가고 있다. 11월 말부터 12월까지는 한국전력과 한전KDN, 한전KPS 등 주축 기관이 이전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주 여건’은 엉망이다. 특히 축산 악취 문제는 끊이지 않는 민원 대상이다. 악취원(源)은 LH 아파트에서 불과 600m 떨어진 한센인 자활촌인 호혜마을. 이곳의 돼지 2만4000여 마리와 소, 닭·오리 축사가 악취의 주범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호혜마을의 이주가 시급하지만 예산 1100억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속수무책이다. 사육농민들도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호혜마을 이장 김재권 씨(51)는 “혁신도시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축산으로 생계를 이어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악취가 난다며 수백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며 “졸지에 오염의 주범이란 손가락질과 함께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편의시설 없는 혁신도시

지난해부터 주민들이 살고 있는 빛가람도시에는 아직까지 병원 약국 소방서 경찰서 등의 기본적인 편의시설조차 없다. 주민들이 바라는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삶의 질을 높여줄 문화시설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다. 여기에 도시기반시설과 상가 오피스텔 건축 공사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이 되면서 시내 곳곳에 건축자재가 나뒹굴고 있다. 또 밤이면 전기요금 절약을 이유로 가로등 절반을 꺼 주민들이 치안을 걱정하고 있다. 광주, 나주시 등과의 연계 교통수단도 아직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현재 빛가람도시 인구는 2200명. 당초 계획인구 5만명의 4% 수준이다. 한 이전기관 직원은 “퇴근 후 갈 곳도 없는 데다 어둑하고 공사 자재 등 위험물이 방치돼 거리에서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며 “이주를 결심했던 직원들조차 마음을 바꾸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 지원해야” 목소리

나주시는 이용객이 없어 텅텅 빈 채 운행하는 연계 버스 3개 업체에 연간 15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또 내년 상반기에는 호혜마을 축사 이전을 위해 시비 50억원을 투입하는 등 적지 않은 예산을 쓰고 있다. 반면 혁신도시 특별법에 따라 이전기관의 법인세 지방세 등을 대폭 감면해줘 향후 5~8년 정도는 세수 증대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민석 나주시 혁신도시팀장은 “나주시의 연간 예산 5000여억원 중 복지비용 의무 부담액을 빼면 가용예산은 몇 백억원에 불과하다”며 “현재도 타사업예산을 축소하면서까지 혁신도시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언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라고 했다. “이전기관 직원 이주 인센티브를 포함해 정주 여건과 교통 인프라 확충 등에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이 요구된다”(전남대 김일태 경제학과 교수)는 지적이 나온다.

나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