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 노동시장은 선진국 수준으로 유연화되지 않는 것일까. 많은 기업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한국 노동시장 유연성의 핵심은 파견근로의 전면 확대, 파견근로 및 기간제의 사용기간 한도를 2년에서 3년(또는 그 이상)으로 연장 등이다. 그런데 정부가 현재 만지작거리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에는 기간제 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또 재계가 반대해왔던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노동계를 무마하기 위한 협상용 카드로 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는 생색내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독일 일본 미국 영국 등은 파견근로의 전면 허용, 파견근로자 및 기간제의 사용기간 폐지 또는 3년 이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한국에서 금지하고 있는 제조업에 대한 파견근로도 허용하고 있다.

국민 설득할 논리개발 필요

부존자원도 없고 대외무역의존도가 높아 노동시장 유연성이 어느 나라보다도 필요한 한국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무엇보다 좌편향된 사회 분위기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명분과 조직논리를 중시하는 노동계와 좌파세력이 유연화에 거세게 반대하면 여당은 물론 관계 부처와 학자들까지도 이런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우리 경제에 왜 필요한지, 고용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엔 별 관심이 없다. 이들은 비정규직 고용을 늘리는 정책들은 사회악이란 식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고용경직성이 높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고용률은 낮고, 고용유연성이 높은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의 고용률은 높다.

따라서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성을 관철시키기 위해선 노동계와 좌파세력들의 주장을 뒤엎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의 경쟁력과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의지는 없어 보인다. 그저 기간제 사용의 연장 추진을 통해 박근혜 정부도 최소한의 유연성을 확보하려 했다는 성의 표시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도 이런 정부의 정책방향이 지속될 경우 기업들의 인력운영이나 경영은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노동시장 경직성,고용에 악영향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좌파·우파정권을 가리지 않고 줄곧 주장해왔던 해묵은 과제다. 노무현 정권 때인 2004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파견근로 전면확대와 파견 및 기간제근로자의 사용기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을 추진하다 노동계 반대에 부딪쳐 무산됐고 이명박 정권 때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밀어붙였으나 노동계 반대가 거센 데다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여당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이 겹치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명분을 앞세우는 노동계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비정규직법안을 개정하기 위해선 노동시장 유연성이 왜 필요한지, 우리 경제에는 어떤 도움이 되는지 등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노동시장 상황이 매우 끔찍하다. 직원을 너무 보호하려다가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노동시장 개혁을 촉구한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장 티롤 프랑스 툴루즈대 교수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윤기설 좋은일터연구소장·경제博 upyks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