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戰作權 환수 재연기는 불가피했다
지난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안보와 관련해 분수령이 될 만한 결정이 이뤄졌다. 양국 국방장관이 전시작전통제권을 분리하는 시점을 2020년대 중반으로 미루고, 연합사를 해체하지 않고 서울에 잔류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양해각서에 서명한 것이다.

전작권을 예정대로 2015년에 환수하는 것과 환수 시기를 미루는 것 사이에는 장단점이 교차한다. 하지만 장단점들의 경중을 비교해보면 이번 합의는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안보 흐름에 역행하는 과거 정부의 조치를 안보상황에 맞게 바로잡았다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조치였다.

2005~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전작권의 조기 환수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펼친 논리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국가자존심을 위해서라도 군사주권을 가져야 하고, 둘째는 그토록 많은 국방비를 써왔으니 충분한 독자능력을 갖춘 것으로 봐야 하며, 셋째는 전작권의 환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개입의지가 약화되는 것도 아니고 한·미군이 따로 전작권을 행사하는 체제 하에서도 협조만 잘 하면 같은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들이 일정한 설득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고, 적지 않은 젊은이들은 ‘자주’ 논리에 매료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주의적 시각을 가진 전문가들에게는 조기 환수에 반대하는 논리의 설득력이 찬성 논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자존심 논리보다는 전쟁을 억제할 가능성과 전쟁 발발 시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한국군의 오랜 현대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감시정찰(ISR), 지휘통제통신(C4I), 정밀타격(PGM) 등의 분야에서 미국과의 격차는 엄청났다. 전작권을 분리해도 유사시 미국의 개입의지가 약해지지 않는다는 논리는 상식에 맞지 않았고, 양국군 협력체제가 단일지휘체제만큼 효율성을 발휘한다는 주장은 2인3각으로도 혼자 달리는 것만큼 빨리 달릴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무렵 1978년 연합사 창설의 주인공인 류병현 전 합참의장이 저서 ‘한·미동맹과 작전통제권’에서 “한·미연합방위체제를 흔들면 한반도의 전략적 균형이 무너진다”고 호소했지만, 정부는 노병의 충정 어린 주장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노무현 정부의 전작권 조기환수 시도는 안보흐름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비대칭 전력을 증강하고 있었지만, 이듬해인 2007년 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2012년부로 전작권을 분리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환수 시기를 2015년으로 연기했지만, 북한의 핵개발이 지속되고 한반도의 안보불안이 커지면서 재연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분출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의 전작권 환수 재연기는 시대적 안보상황에 부합하는 것이며, 전작권 분리를 손꼽아 기대하던 북한에는 안보상황을 악화시킨 대가(?)로 당연히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현재의 전작권 체제가 무한정 지속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인 이상 한국군은 진실로 독자적 작전능력 배양에 진력해야 한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킬체인(kill-chain)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가 완성되고 군사정찰위성이 확보되는 2023년께를 ‘홀로서기’를 시도할 시기로 밝히고 있지만, 어찌 그뿐이겠는가. 고가의 첨단장비와 무기를 확보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한국군이 배양해야 할 정신자세이다. 이 기회에 동맹국에 대한 의타심을 청산하고, 스스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해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다면 이번 전작권 환수의 재연기는 역사에 누를 끼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태우 < 객원논설위원건양대 교수 defensektw@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