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임계경제학
1929년 10월 미국의 주식 대폭락이 일어나기 불과 1주일 전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미국 경제가 영원한 정점에 도달해 있다고 상찬했다. 그로부터 3년 뒤 미국의 국부는 50% 이상 파괴됐다. 어떤 경제학자도 대공황이 이렇게 심각하게 전개될 줄 예측하지 못했다. 미국의 물리학자와 통계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을 비꼬았다. 이들은 경제모델 설정에서 기본적인 가정들의 오류가 있을 것이고 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들 중 일부는 차라리 물리학과 통계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활용해 경제 이론을 설정하고 현실을 예측하는 게 오히려 나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분야가 경제물리학(econophysics)이다.

경제물리학은 물론 경제학이 아니다. 물리학 분야의 하나다. 이 분야 학자의 논문은 물리학 저널에 게재된다. 경제물리학자들은 경제현상에도 물질의 세계와 같은 보편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관심 갖는 것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보이는 경제의 임계상태와 임계점(critical point)이다. 경제물리학을 아예 임계경제학으로 부르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임계점은 정상적으로 행동하던 입자들이 한순간에 아무런 조짐 없이 전혀 다른 형태와 성질로 바뀌는 포인트다. 임계점을 지나면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물이 온도와 압력의 영향으로 수증기로 변하는 것이 순식간인 것과 마찬가지다. 경제 일부분의 변화가 순식간에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경제물리학자 장 피에르 아길라는 “금융 붕괴 또한 작은 외부의 동요가 무한히 증폭돼 나타나는 통계 역학의 임계점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과 물리학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물리학의 법칙성을 경제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며 반발하기도 한다. 독자적 개성을 가진 각각의 경제주체들을 획일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물리학자들의 이런 노력은 국가 경제위기 상황의 조기 경보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 및 기업, 국가 부채비율 모두 세계경제포럼(WEF) 기준 채무부담 임계치보다 최대 46%포인트 높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한번 선을 넘으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임계점이다. 임계경제학 시각에서 보면 이미 정상범위를 벗어나 혼돈에 빠져 있는 불안정 상태다. 물리학자들의 관점이 틀렸기를 기대해야 할까.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