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라고 했다. 한용운은 그의 시 ‘님의 침묵’에서 이를 노래했다. 만나면 헤어지는 게 순리임을 알지만 기쁨의 순간에 미리 슬픔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만나는 순간 미리 헤어짐을 걱정한다면 그건 속 좁은 기우일 뿐이다. 이별, 헤어짐도 삶의 속성 중 하나라면 그것도 붙잡고 즐겨야 마땅하다. 이별을 이별답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쓸데없는 눈물에 쏟아 붓지 않는 것. 이별을 느끼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아마 이별의 정수일 테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가 있다. 한 아역 배우를 기용해 12년간 성장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 ‘보이후드’ 이야기다. 영화는 여섯 살 아이가 열여덟 살 청년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매년 한 차례 영화를 찍는 12년 동안 소년은 무럭무럭 자란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소년이 겪는 이별들이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소년의 나이테마다 각기 다른 이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특별히 긴 잔상을 남긴 건 유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집을 떠나 이사가는 장면이다. 엄마는 새로 이사 올 사람들을 위해 문틀에 그어 둔 선들을 새로 칠하라고 부탁한다. 이름, 날짜, 선. 그 선들은 바로 아이들의 키를 잰 선이다.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추억과 이별한다. 페인트를 칠하는 소년의 눈에는 서운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영원히 그 집에 머물지 않는 한 언젠가 그 선들은 지워야만 한다. 머물고 싶지만 그 시절과 결별해야만 다른 시공간이 열린다.

성장은 그런 것이다. 도망치다시피 떠나온 집에 남은 알코올 중독자 친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헤어진 여자친구가 지금은 어떻게 지낼지 알 수 없다. 시간은 흘러가고 소년은 성장한다. 작고도 소중한 이별들을 거치며 소년은 다른 소년이 돼간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장 역시 돌이킬 수는 없다. 이미 시간의 터널을 빠져나온 소년은 어제의 그 소년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별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나이가 들면 이별할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무겁고 아픈 이별의 순간과 종종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어린 날, 소중한 장미나무를 두고 이사를 떠나던 그 서운함을 견딘 힘으로 오늘치의 상실을 버틴다. 결국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다. 그런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헤어짐은 참 익숙해지기 어렵다.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