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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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기면 10만원을 주겠다.”

제임스 김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사장은 회사에 공고를 붙였다. 자기와 탁구를 쳐서 이기면 10만원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직원이 도전했지만 그의 실력을 당해내지 못했다. 결국 한 직원이 이겨 상금을 받았다. 기념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지는 것을 싫어하는 김 사장은 다시 연습한 뒤 그 직원에게 도전했고 승리를 따냈다.

“이겨 본 경험이 계속 쌓여야 진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사장인 자신에게 도전하라고 부추긴 것은 직원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2년 전에는 흑백TV를 구해와 홍수환 선수의 ‘4전5기’ 권투 경기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어로는 ‘위닝(winning) DNA’라고 하는 이기는 정신이 한국인에게 특히 많다는 것을 강조해주기 위해서였다.

이런 자극 덕분에 한국MS는 2010~2012년, 2014년 최우수법인상을 받았다. 세계 120여 MS 지사 가운데 가장 우수한 법인으로 꼽혔다는 뜻이다. 야후코리아 사장으로 있었던 김 사장이 2009년 한국MS로 오기 전에 한국MS가 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길 수 있다는 정신 가져야”

1962년 한국에서 태어난 김 사장은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 UCLA(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에서 경제학을 배웠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AT&T 등 미국 회사에서 일하던 그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2005년 온라인 검색광고 회사인 오버추어가 한국에서 사업을 확장하던 때였다. 오버추어코리아 사장을 맡은 그는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며 사기를 복돋워주는데 힘을 기울였다. “패배주의가 있으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당시 오버추어코리아 마케팅 이사를 맡았던 김영재 한국MS 커뮤니케이션팀 상무는 그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오버추어코리아에 50명가량의 콜센터 직원이 있었는데 ‘우리는 인정 못 받는다’ ‘메인이 아니다’는 패배주의에 빠져 있어 고객 만족도가 낮게 나타나고 있었다”며 “김 사장에게 콜센터 직원들이 상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스키장이나 워크숍에 가게 해달라고 건의했더니 적극 환영하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 뒤로 직원들의 생각이 바뀌고 경영지표가 달라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버추어코리아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공로로 2006년 그는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맡는 오버추어 아시아지역 총괄 사장으로 승진해 1주일에 반은 한국, 반은 일본에서 지내는 생활을 했다. 2007년에는 모회사인 야후코리아 사장으로 승진했다. 오버추어와 야후코리아를 통합 사장 체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자회사 사장이 모회사 사장을 밀어내고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그만큼 김 사장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책임감·의사소통·팀워크 세 박자

2009년 한국MS로 스카우트돼 온 김 사장은 MS 직원들에게 ‘액트 투 윈(act to win)’이란 경영철학을 전달했다. 책임감(accountability), 의사소통(communication), 팀워크(teamwork) 등 세 박자만 맞으면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한국MS에서는 직원들이 언제 어디서 일하는지 모두 자율에 맡긴다. 특히 지난해 말 서울 삼성동에서 광화문이 보이는 중학동으로 사옥을 옮긴 뒤에는 자율좌석제 시행으로 누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이승연 한국MS 부장은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일하라는 의미”라며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들은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아 좋아졌다”고 말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뒤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해 애를 집에 데리고 가 저녁을 먹인 다음, 밤 9시에 집에서 조용히 일하는 게 가능해졌다. 한국MS의 성공적인 여성 인력 지원 정책은 작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사례 연구로 다뤄지기도 했다.

의사소통은 수평·수직으로 모든 정보가 원활하게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팀워크를 높이기 위해 김 사장은 직원들을 데리고 워크숍에 가는가 하면 열심히 얻은 성과에 대해선 확실히 보상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해놓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MS는 승진을 위한 발판이 된다는 의미에서 ‘런칭패드’라고 불린다. 최고운영책임자(COO) 격인 마케팅&오퍼레이션 총괄 직책을 맡았던 사람들이 줄줄이 벨기에 지사장, 동남아시아지역 총괄대표, 일본 온라인 총괄대표 등으로 승진해 나갔기 때문에 미국인 MS 직원들이 한국MS로 오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친화력으로 직원들 벽 허물어

미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적인 문화를 잘 알고 친화력이 강한 것도 김 사장의 강점이다. 오버추어코리아 사장으로 막 부임했을 때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온 업무 처리 방식을 바꾸려 하자 직원들이 반발했다. 김 사장을 쫓아내자며 서명을 받았다. 하극상이었다. 그는 이를 억누르기보단 수시로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벽 허물기’에 나섰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도 거리낌 없이 돌렸다. “쟤 옛날에 나 쫓아내려고 서명했어”하고 농담을 던지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능력만 있으면 중용했다.

한국MS에서도 마찬가지다. 중학동 사옥으로 이사 와서는 직원들을 데리고 갈 식당부터 탐방했다. 주차장이 부족해 세종문화회관에 차를 세워두고 오는 직원들이 거리가 멀다고 불평하자 직접 핑크 헬멧을 쓰고 킥보드 타고 세종문화회관에서 회사로 오는 모습을 촬영해 비디오로 보여주기도 했다. 거리가 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좀 걷자는 메시지를 코믹하게 표현한 것이다.

다른 회사에서 한국MS로 온 지 한 달 내지 100일 된 임원급 직원에게는 회사 다니는 게 어떤지 잊지 않고 말을 건넨다. 김 사장 자신도 “감으로 상대방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아는 게 장점”이라고 말을 한다. 어떤 한국MS 직원에 대한 평가를 본사에서 궁금해할 무렵, 미리 물어보기 전에 메일을 보내 그 직원은 어떻다고 말을 해주는 것도 그런 능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자기 관리는 매우 엄격하다. 유영석 한국MS 이사는 “김 사장의 아픈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며 “내가 감기 걸렸을 땐 아프면 프로가 아니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전날 밤에 챙겨놓은 신발과 옷을 입고 몇 분 만에 집에서 빠져나온다. 오전에 1시간~1시간30분 운동하고 7시45분에서 8시 사이에 회사에 도착한다. 일은 대부분 오전 중에 다 끝낸다. 저녁 약속이 없으면 오후 5~6시에 퇴근한다. 취미는 테니스다. 준프로급이다. 한 번은 태국 호텔에 머물면서 현지 프로선수를 초청해 경기를 치러 완승을 한 적도 있다.

■ 제임스 김 사장

△1962년 출생 △미국 UCLA 경제학과 졸업(1984년)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MBA)(1992년) △미국 AT&T 본사 마케팅 총괄(1992~1995년) △미국 비비앙인터내셔널 대표(1995~1999년) △미국 코코란닷컴 대표(1999~2001년) △미국 펠리세이즈 어드바이저 대표(2001~2005년) △오버추어코리아 사장(2005~2006년) △오버추어 아시아지역 총괄사장(2006~2007년) △야후코리아 비즈니스 총괄사장(2007~2009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장(2009년~현재)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