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등반 중인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등반 중인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히말라야 칼라파트라(5550m), 말레이시아 키나발루(4101m).’

이름만으로도 험준한 산세와 만년설이 떠오르는 세계적인 고산(高山)들이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라면 언감생심인 이 산들을 매년 한두 개씩 오르는 경영인이 있다. 그것도 환갑을 넘긴 나이에….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65)은 “나이와 관계없이 지친 심신을 달래는 최고의 힐링법은 고산 트레킹”이라고 강조했다.

정 사장이 해발 4000m 이상의 고산을 좋아하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고산병 때문이다. 고산병은 산소가 부족한 고지대에 오르면 두통과 메스꺼움과 함께 호흡 곤란을 겪는 증상이다. 최악의 경우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고산병이 어떻게 지친 심신을 치유할 수 있을까.

정 사장은 “해발 3000m를 넘어서면 고산 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몸 안에서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다”며 “그 싸움에서 이긴 뒤 5000m 산 정상을 눈앞에 두게 되면 모든 고통과 스트레스가 하얗게 지워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때 비로소 온전한 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고 산 정상에 도달하면 내 모습마저 사라지는 무아지경을 경험한다”고 전했다. ‘등산은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나를 걸어 내려가는 행위’라는 게 정 사장의 지론이다.

정 사장은 이 맛에 중독돼 어지간한 고산들은 대부분 다녀왔다. 지난해 칼라파트라 정상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를 다녀왔고, 지난 7월엔 중국 쓰촨성의 쓰쿠냥산(5355m)에 올랐다. 그는 “고산에 오르려면 자연 환경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평소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매주 산을 오르며 체력을 유지한다. 백두산, 한라산, 지리산, 태백산, 속리산 등 웬만한 산은 모두 가봤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때면 청계산이라도 오른다.

정 사장이 산에 푹 빠지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기껏해야 휴가 때 알려지지 않은 암자를 찾아 생각을 정리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2006년 1월 속리산 안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새벽 물안개가 자욱해 사람들이 등산을 포기하는 데 왠지 올라가고 싶어 문장대까지 갔다”며 “그 위에서 보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산을 좋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산 사나이가 된 건 그 다음해다. 2007년 1월 사내 등산 모임의 고문을 맡으면서부터다. 산(山)과 비(雨), 친구(友), 물(水)을 뜻하는 ‘메비우수’ 회원들이 가는 산이라면 어디든 함께했다. 메비우수 활동이 없는 기간엔 혼자라도 산에 올랐다. 그런 식으로 2007년에 갔다온 산만 56개였고, 이후 ‘좀 더 높은 산’을 찾게 됐다.

고산 트레킹을 좋아하면서 정 사장의 경영관도 바뀌게 됐다. 2001년 혼다코리아 설립 때부터 최고경영자를 맡아 ‘무조건 빨리’만을 외쳤지만 산을 좋아하면서 천천히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정 사장은 “경영이라는 것도 한발 앞의 고지를 오르는 게 아니라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해 가는 여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