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오타구 vs 문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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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이 추락하면서 협력업체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이 기침하면 중소기업은 폐렴에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3·4차 협력업체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동률이 급락하고 일감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중소기업은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있을까. 최근 중소업체들이 모여 있는 도쿄 오타구(大田區)를 찾았다. 전체 기업 4778개(2008년 기준) 중 종업원 19인 이내의 소기업이 54%에 이른다.
주조 단조 프레스 도금 열처리 금형업체들이다. 규모는 작아도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다. 0.01㎜ 단위의 정밀 금속가공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을 지닌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가키모토 신지 오타구산업진흥협회 사무국장은 “요즘도 우리 기술을 알아보고 세계 각지에서 월평균 100건씩 제품 가공 의뢰가 들어온다”며 “며칠 전에도 한국의 대기업 두 곳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日, 협업으로 새 먹거리 발굴
쇠 깎는 업체들의 집합소라는 점에서 서울 문래동은 오타구와 비슷하다. 3·4차 협력업체들이 모여 있는 문래동에는 선반 밀링 용접 금형 등 금속가공업체 1350개(인근 신도림동 포함 시 약 2000개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대부분 종사자 9인 이하의 소공인이지만 이들의 기술력도 뛰어나다. 미사일 부품까지 깎을 정도다.
하지만 두 지역은 차이가 있다. 첫째, 오타구 업체들은 공동으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클러스터’ 활동이다. 약 100개 업체가 뭉쳐 봅슬레이를 최근 개발했다. 0.01초를 다투는 스포츠용구여서 소재뿐 아니라 공기저항최소화 등 복합기술이 있어야 한다. 도쿄대가 제품 개발을 돕고 있다.
이같이 ‘나만의 제품’으로 차세대 먹거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의 발주가 없어도 홀로서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의료기기 분야에서만 60여종의 신제품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문래동이나 신도림동에서는 이런 활동을 찾아보기 힘들다.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야
둘째, 업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지원기관의 강력한 마케팅 활동이다. 오타구산업진흥협회에 들어서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협회는 바이어와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비즈니스센터다. 문래동에는 이런 전시장이 없다.
셋째, 자신감이다. 오타구 기업은 1983년 9177개로 정점을 찍은 뒤 절반 이하로 줄었다.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거나 외부로 이전한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쇠퇴’로 보지 않고 오히려 ‘강소기업의 진정한 집합소’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도 본사는 이곳에 남겨둔다. 광학기기업체인 료와공업은 베트남 하노이에 공장을 세웠지만 본사와 연구개발팀은 오타구에 놔뒀다. 오무라 유지 료와공업 사장은 “다양한 신제품과 수주 후 3일 내 납품하는 ‘단(短)납기전략’으로 고객을 모으고 있다”고 자사 전략을 자신있게 소개했다.
문래동이나 신도림동 기업인들의 고민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제조업체 32만개 중 81%인 26만개에 이르는 소공인의 공통된 과제다. 이제는 중소기업이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경기 탓을 하거나 대기업에만 의존하지 말고 나만의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오타구의 전략은 눈여겨볼 점이 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중소기업은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있을까. 최근 중소업체들이 모여 있는 도쿄 오타구(大田區)를 찾았다. 전체 기업 4778개(2008년 기준) 중 종업원 19인 이내의 소기업이 54%에 이른다.
주조 단조 프레스 도금 열처리 금형업체들이다. 규모는 작아도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다. 0.01㎜ 단위의 정밀 금속가공을 할 수 있는 기술력을 지닌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가키모토 신지 오타구산업진흥협회 사무국장은 “요즘도 우리 기술을 알아보고 세계 각지에서 월평균 100건씩 제품 가공 의뢰가 들어온다”며 “며칠 전에도 한국의 대기업 두 곳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日, 협업으로 새 먹거리 발굴
쇠 깎는 업체들의 집합소라는 점에서 서울 문래동은 오타구와 비슷하다. 3·4차 협력업체들이 모여 있는 문래동에는 선반 밀링 용접 금형 등 금속가공업체 1350개(인근 신도림동 포함 시 약 2000개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대부분 종사자 9인 이하의 소공인이지만 이들의 기술력도 뛰어나다. 미사일 부품까지 깎을 정도다.
하지만 두 지역은 차이가 있다. 첫째, 오타구 업체들은 공동으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클러스터’ 활동이다. 약 100개 업체가 뭉쳐 봅슬레이를 최근 개발했다. 0.01초를 다투는 스포츠용구여서 소재뿐 아니라 공기저항최소화 등 복합기술이 있어야 한다. 도쿄대가 제품 개발을 돕고 있다.
이같이 ‘나만의 제품’으로 차세대 먹거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의 발주가 없어도 홀로서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의료기기 분야에서만 60여종의 신제품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문래동이나 신도림동에서는 이런 활동을 찾아보기 힘들다.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야
둘째, 업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지원기관의 강력한 마케팅 활동이다. 오타구산업진흥협회에 들어서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협회는 바이어와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비즈니스센터다. 문래동에는 이런 전시장이 없다.
셋째, 자신감이다. 오타구 기업은 1983년 9177개로 정점을 찍은 뒤 절반 이하로 줄었다. 후계자가 없어 문을 닫거나 외부로 이전한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쇠퇴’로 보지 않고 오히려 ‘강소기업의 진정한 집합소’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도 본사는 이곳에 남겨둔다. 광학기기업체인 료와공업은 베트남 하노이에 공장을 세웠지만 본사와 연구개발팀은 오타구에 놔뒀다. 오무라 유지 료와공업 사장은 “다양한 신제품과 수주 후 3일 내 납품하는 ‘단(短)납기전략’으로 고객을 모으고 있다”고 자사 전략을 자신있게 소개했다.
문래동이나 신도림동 기업인들의 고민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제조업체 32만개 중 81%인 26만개에 이르는 소공인의 공통된 과제다. 이제는 중소기업이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경기 탓을 하거나 대기업에만 의존하지 말고 나만의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오타구의 전략은 눈여겨볼 점이 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