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봉사단체 ‘e세대 가정봉사단’을 통해 인연을 맺은 홀몸노인 장옥순 씨(가운데)와 모녀 신인숙 씨(왼쪽), 이재빈 양이 활짝 웃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제공
성동노인종합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봉사단체 ‘e세대 가정봉사단’을 통해 인연을 맺은 홀몸노인 장옥순 씨(가운데)와 모녀 신인숙 씨(왼쪽), 이재빈 양이 활짝 웃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제공
외로움을 그림자처럼 안고 살았다. 서울 마장동에 사는 장옥순 씨(80)의 인생은 그렇게 외롭기만 했다. 1950년 6·25전쟁 통에 남편을 잃고 반세기가 넘도록 홀로 지냈다. 남편을 닮은 자식을 낳고 오손도손 살고 싶었던 새색시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하는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이러다간 혼자 골방에서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장씨에게 64년 만에 가족이 생겼다. 바로 올해 삼성행복대상을 받은 ‘e세대 가정봉사단’의 일원인 신인숙 씨(47)와 딸 이재빈 양(18)이다.

“우리 딸이고 손녀예요. 예쁘지요?”

서울 마장동 성동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장씨는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새 가족을 소개했다. 처음 복지관에 들어설 때만 해도 기자와의 만남에 긴장하는 듯했지만 이내 표정이 바뀌었다. 신씨와 이양을 보자마자 볼우물이 쏙 들어가도록 환하게 웃었다. 장씨를 본 신씨와 이양의 얼굴에도 반가움을 드러낸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양은 “할머니, 재빈이 왔어요”라고 애교 듬뿍 담긴 인사를 건네며 장씨의 품에 안겼다. 영락없는 ‘진짜 가족’이었다. 보기에도 가슴이 찡했다.

엄마, 나 할머니 손녀 할래

[人사이드 人터뷰] "내신 잘 받으려 봉사 시작…이젠 '진짜 가족' 같아요"
신씨와 이양이 장씨 가족이 되겠다고 나선 건 지난해 봄. 우연처럼 만남의 기회가 찾아왔다. 성동노인종합복지관은 이양이 다니는 한양대부속고등학교를 방문해 ‘e세대 가정봉사단’을 모집한다고 설명회를 열었다. 봉사단은 홀몸노인에게 할머니와 딸, 손자녀로 구성되는 한 가정을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1 대 1 결연을 맺은 홀몸노인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게 단원들의 일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내신에 필요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울 생각으로 지원했어요. 그런데 막상 할머니 얼굴을 보고 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정말 할머니의 가족이 되고 싶어서 진심을 다했어요.”

딸의 결정을 들은 신씨는 고민에 빠졌다. 봉사단원의 의무사항 중 하나는 1주일에 한 번 이상 노인의 집을 방문하는 건데, 모녀가 사는 집은 지하철을 타고도 50분이 걸리는 송파구 풍납동이었기 때문이다. 행여 이양의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양으로부터 ‘할머니 정말 좋은 분인데 외롭게 사셨잖아. 우리가 함께하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실 거야. 나 할머니 손녀 할래’라는 말을 들은 뒤 가슴이 뭉클해져 자신도 장씨의 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양의 시험기간에는 혼자서라도 반찬통을 싸들고 장씨의 집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장씨는 “뭘 이런 걸 해와”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신씨의 반찬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곤 했다.

“당뇨가 있어 채소 위주로 반찬을 해드려요. 특히 잡채를 좋아하세요. 집에서 반찬을 만들다가도 무심코 어머니 생각에 양을 넉넉히 해서 가져다 드리지요. 맛있게 드시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가족이 되다

남남이 만나 애틋한 정을 쌓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끈끈한 가족애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장씨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혹시’하는 기대감에 복지관의 결연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막상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다. “혼자 지낸 세월이 긴 탓에 초기에는 많이 어려워하셨어요. 괜히 젊은 사람들 고생시킨다며 미안해하시고 부담스러워하셨거든요. 그래서 복지사분들께 상담도 해봤어요. 어머님과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요. 그래서 전화로 안부를 자주 여쭙는 등 소통 횟수를 늘렸어요.”

신씨는 1주일에 한 번씩 장씨 집을 찾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전화를 걸었다. ‘편찮으신 곳은 없나요’라는 간단한 인사로 시작한 통화는 어느덧 속 깊은 일상을 공유할 정도로 길어졌다. 통화 시간이 길어진 만큼 정도 깊어갔다. “지난해 말부터 어머님의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꼈어요. 자주 목소리를 듣고 얼굴도 보고 하니까 편하게 대해주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어머님 생각이 난 적도 있어요. 그때 ‘우리가 정말 가족이 됐구나’ 싶더라고요.”

신씨의 얘기를 듣던 장씨의 눈이 촉촉해졌다. 자신에게도 ‘가족’으로 의지할 만한 존재가 있다는 게 그저 고마운 듯했다. 장씨는 “내가 아주 오래전, 젊을 때부터 혼자 살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는 “좋아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손녀의 ‘아리랑’에 붉어진 눈시울

이양도 대구에 사는 친할머니보다 더 자주 뵙는 장씨에게 마음이 더 간다고 했다. 지난 5월에는 장씨가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이양의 학교 합창대회 공연도 보러 왔다. 학교 합창단으로 활동하는 이양은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장씨가 생각나 초대장을 건넸다. 장씨에겐 생애 첫 공연 관람이자 하나뿐인 손녀의 자랑스러운 무대였다. “공연에서 ‘아리랑’을 불렀는데 할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때 마음이 찡했어요.”

장씨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감격스럽다며 뿌듯해 했다. 조곤조곤 손녀 자랑을 늘어놓았다. “노래도 잘하고 참 예뻐. 마음이 예쁘니까 노래도 잘 하나 봐.”

오는 11월에 또 합창대회가 열린다. “할머니, 또 공연보러 오실 거죠?”라는 이양의 말에 장씨는 또다시 함박웃음을 지었다. 장씨의 얼굴에선 외롭거나 쓸쓸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매일 혼자 눈 뜨고 혼자 밥 먹던 생활이 이제는 180도 바뀌었다. 말벗이 있고 가족이 있다. 그동안 이런 행복 없이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을 정도란다.

두 손 꼭 잡고

대화를 이어가는 내내 장씨의 두 손은 이양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장씨는 연신 이양의 손을 쓰다듬으며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항상 혼자였던 집안에 손녀가 찾아와 재잘재잘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면 그저 천국에 온 것 같다고 했다. 장씨가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는데”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이양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가 해주신 게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해주셨고, 지금도 이렇게 사랑을 듬뿍 주고 계시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양은 장씨를 만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우쳤다고 한다. “생각하면 의지가 되고, 만나면 행복하고, 안 보면 보고 싶고 그런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요. 생각만해도 좋은 거 있잖아요. 꼭 핏줄로 이어질 필요는 없더라고요. 진심 하나면 충분합니다.”

봉사단 활동 기간은 총 2년이어서 신씨와 이양의 활동 기간은 올 연말까지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끼리 관계를 맺고 정을 나누는데 기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돼서도 할머니와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서로가 좋으니까요. 봉사단을 통해 인연을 맺기는 했지만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됐는데 어떻게 헤어져요. 지금처럼 이렇게 서로 의지하며 지내려고요.”

함께하고 싶은 일도 많다. 신씨와 이양이 장씨의 집을 찾은 적은 많지만 장씨가 모녀의 집을 방문한 적은 아직 없다. “집 앞에 올림픽공원이 있거든요. 풍경도 좋고 정말 시원해요. 내년 봄쯤 날이 따뜻해지면 할머니랑 같이 손잡고 가려고 해요. 할머니께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양의 얘기를 듣던 장씨의 눈가에 또 눈물이 고였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