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종이에 드리워진 큰 그늘 생각하며 山水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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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일 선화랑서 수묵화전 여는 원로시인 김지하 씨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원로 시인 김지하 씨(73)에게 미학은 예술의 본질을 찾는 학문이고, 산수화는 우주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수화를 그리는 창작 과정을 수신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으로 삼았다. 미학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신념에 찬 필치가 토해내는 그의 산수화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실체로서 시각적인 해방감을 맛보게 한다.
김씨가 오는 8~18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김지하의 빈산’이란 제목으로 수묵전을 연다. 장모인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별세한 이후 눌러앉은 강원 원주를 비롯해 철원·영월, 충북 제천·충주, 경기 여주·이천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생한 수묵 산수 100여점을 내보인다. 실체(형상)에 몰입해 들어가려는 의지가 충만한 작품들로,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울림이 그만의 감수성과 어우러져 화폭에 녹아 있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난과 매화가 있고 활짝 핀 모란도 보인다.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떠는 나뭇가지와 꽃들이 손 밑에서 자라난 것처럼 생생하다.
“그림 그리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습니다. 4~5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요. 외가의 뒤뜰에 있는 모란이 제일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어린 시절 제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면 배고프다’며 어린 제 두 손을 꽁꽁 묶어 놨죠. 그럴 때마다 저는 발가락에 숯을 끼워가며 꽃과 새를 그렸습니다.”
그는 당시 어머니 때문에 그림을 포기했지만 1980년대부터 그림을 틈틈이 그렸다. 6년여의 투옥 끝에 1980년 석방된 뒤에는 난초를 치며 심신을 추슬렀고 이후로는 달마도를 비튼 ‘코믹 달마’, 눈보라 속에 피어나는 ‘한매(寒梅)’ 등을 그렸다. 그림을 통해 관념의 그늘에서 벗어나 대상의 본질을 직시하려 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나는 원래 바다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내 고향이 전남 목포인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바다의 진정한 시작은 산입니다. 그래서 텅 빈 종이에 서린 큰 그늘을 생각하며 산을 그리게 됐습니다.”
김씨는 그림 끝 낙관에 ‘모심’이라고 적었다. 공경하는 마음, 모시는 마음으로 임하겠다는 뜻에서다. 작품에는 시인의 본명인 ‘영일(英一)’을 남겼다.
“서울대 학생 때 시화전을 하면서 ‘지하’라는 필명을 지었는데 나중에 성명학자가 ‘매일 감옥에나 가겠군’ 하더군요. 새 시대가 와서 나도 감옥에 안 가고 잘 살려고 지하 대신 영일이라고 썼습니다.”
김씨는 “그림 팔아서 우리 마누라(김영주 토지문학관 대표)에게 새 차 한 대 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마누라가 ‘그림 그려서 나 차 한 대 사줘요’ 해서 그리게 되니 굉장히 기쁩니다.” 오는 10일에는 김씨의 신간 ‘초미’(初眉)와 ‘아우라지 미학(美學)의 길’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02)734-1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김씨가 오는 8~18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김지하의 빈산’이란 제목으로 수묵전을 연다. 장모인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별세한 이후 눌러앉은 강원 원주를 비롯해 철원·영월, 충북 제천·충주, 경기 여주·이천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생한 수묵 산수 100여점을 내보인다. 실체(형상)에 몰입해 들어가려는 의지가 충만한 작품들로,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울림이 그만의 감수성과 어우러져 화폭에 녹아 있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난과 매화가 있고 활짝 핀 모란도 보인다.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떠는 나뭇가지와 꽃들이 손 밑에서 자라난 것처럼 생생하다.
“그림 그리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습니다. 4~5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요. 외가의 뒤뜰에 있는 모란이 제일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어린 시절 제 어머니는 ‘그림을 그리면 배고프다’며 어린 제 두 손을 꽁꽁 묶어 놨죠. 그럴 때마다 저는 발가락에 숯을 끼워가며 꽃과 새를 그렸습니다.”
그는 당시 어머니 때문에 그림을 포기했지만 1980년대부터 그림을 틈틈이 그렸다. 6년여의 투옥 끝에 1980년 석방된 뒤에는 난초를 치며 심신을 추슬렀고 이후로는 달마도를 비튼 ‘코믹 달마’, 눈보라 속에 피어나는 ‘한매(寒梅)’ 등을 그렸다. 그림을 통해 관념의 그늘에서 벗어나 대상의 본질을 직시하려 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나는 원래 바다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내 고향이 전남 목포인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바다의 진정한 시작은 산입니다. 그래서 텅 빈 종이에 서린 큰 그늘을 생각하며 산을 그리게 됐습니다.”
김씨는 그림 끝 낙관에 ‘모심’이라고 적었다. 공경하는 마음, 모시는 마음으로 임하겠다는 뜻에서다. 작품에는 시인의 본명인 ‘영일(英一)’을 남겼다.
“서울대 학생 때 시화전을 하면서 ‘지하’라는 필명을 지었는데 나중에 성명학자가 ‘매일 감옥에나 가겠군’ 하더군요. 새 시대가 와서 나도 감옥에 안 가고 잘 살려고 지하 대신 영일이라고 썼습니다.”
김씨는 “그림 팔아서 우리 마누라(김영주 토지문학관 대표)에게 새 차 한 대 사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마누라가 ‘그림 그려서 나 차 한 대 사줘요’ 해서 그리게 되니 굉장히 기쁩니다.” 오는 10일에는 김씨의 신간 ‘초미’(初眉)와 ‘아우라지 미학(美學)의 길’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02)734-1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