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차라리 관피아·감피아를 보내라"
은행권이 다시 낙하산 논쟁으로 시끄러워지고 있다. 늘 문제가 됐던 이른바 ‘관피아(경제관료+마피아)’ 대신 이번에는 ‘정피아(정치인+마피아)’가 논쟁의 중심에 섰다. 가장 시끄러운 곳은 기업은행이다. 신임 감사로 선임된 L씨는 지난달 31일 첫 출근길에 올랐지만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으로 30분 만에 발길을 돌렸다.

노조는 L씨가 은행업무 경험이 없는데도 정치권의 입김으로 감사에 임명됐다고 주장한다. 노조 말대로 이 감사는 은행업무 경험이 없다. 대학 졸업후 대한보증보험(현 서울보증보험)에 입사해 2007년 부사장까지 지냈다. 약 30년을 보증보험사에서만 일한 것이다. 이후 신창건설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은행 감사에 임명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노조는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H의원이 이 감사를 밀었다며 전형적인 정피아 인사라고 주장한다. 그가 지난 대선캠프에서 활동하며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노조는 “차라리 감피아나 관피아를 보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감사원이나 금융당국 출신은 전문성이라도 갖췄지만 정피아는 그렇지도 못하다는 설명이다. 기업은행 감사는 금융위원회가 임명한다. 이 감사를 임명한 금융위는 이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얼마 전 우리은행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10일 J변호사를 신임 감사로 선임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로 활동한 그는 2012년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41번을 받은 인물이다. 법률전문가이긴 하지만 그 역시 은행업무 경험이 없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모두 정부가 대주주다. 원칙적으로 감사로 누구를 앉힐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권이 개입해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감사 선임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인이 불분명한 한국 은행들의 현실을 감안할 때 감사의 전문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감사제도 전반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필수적이다. 금융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책임 있는 대응이 절실하다.

김일규 금융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