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양적완화 파장, 적정환율 유지가 관건이다
지난주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 완화 정책이 종료됐다. 반면 일본은행은 전격적으로 추가적인 양적 완화에 나섰다. 앞으로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한 기대 변화에 따라 국제투자자금의 흐름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 완화는 식어가는 경기회복의 온기를 되살리고 인플레이션 기대를 높이기 위한 충격요법으로 풀이된다. 엔화가 단숨에 달러당 110엔대의 약세를 보이면서 일본은행의 정책 의도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공적 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조치까지 가세하면서 아베노믹스 이후 2차 엔저가 시작될 조짐이다. 이밖에 영국이 미국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금리인상 시점을 모색하고 있고 유로존은 일본처럼 양적 완화의 강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경제상황에 따라 다른 통화정책 행보를 보이는 선진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신흥국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서도 자본유출 가능성에 대비하는 한편 적정환율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선택의 어려움이 점차 커질 수 있다. 한국은 신흥국 중에서 국가신용등급이 높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되고 있어 급격한 자본유출에 따른 위기 가능성은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런 이유로 미 달러화에 대해 원화가 다른 통화와 함께 동반 약세를 보이더라도 원화의 약세 폭이 작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통화에 대해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세를 띠게 되는 것이다. 특히 양적 완화 규모를 늘려가고 있는 일본의 엔화에 대해서는 원화의 강세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매출 부진과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국내 수출기업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다른 신흥국에 비해 한국이 정책 수행을 위한 경제여건의 제약이 덜한 편이라는 점은 다행스럽다. 외환건전성이 취약하고 고물가에 시달리는 신흥국은 대규모 자본유출과 통화가치 급락 위협에 직면해서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을 수가 있다. 경기둔화를 감수하고서라도 금리인상에 나서야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한국도 최근 두 번의 기준금리 인하로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크게 줄어든 것은 조심스럽다. 현재 연 2%인 한국의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0%에 가까운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보다 높지만, 장기채권은 미국과의 금리 차이가 크지 않다. 원화가 국제통화가 아닌 데다 한국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사실상 미국과의 장기금리 차가 역전된 상황으로 볼 수도 있다.

선진국이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이고 실험적인 통화정책을 펼쳐 온 것처럼 한국도 앞으로 경기회복이 미진하면 가보지 않은 금리 영역에 발을 내디뎌야 하는 상황이 올 수가 있다. 이 경우 미국과의 금리차 축소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에 유의하되 지나치게 정책 제약요인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본흐름이 크게 뒤바뀌거나 투자자금이 급격히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은 작은 수준의 금리차보다는 큰 폭의 환율변화에 대한 기대에 기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나 부족한 외환보유액, 통화가치 고평가, 적절치 않은 재정 및 통화정책, 경제주체의 재무건전성 악화 등이 통화가치 급락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곤 한다.

한국 역시 최소한 내부요인이 대규모 자본유출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할 필요는 있다. 외국인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가계부채나 기업 부실 등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장기 경제구조 개혁과제들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낼 필요도 있다. 또 원화 가치가 엔화의 움직임과 크게 괴리되지 않도록 하는 등 적정환율의 유지가 중요하다.

이창선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cslee@lgeri.com >